내 소유의 집이 없으니 천하가 내 집이 되더라는 경험을, 도시를 떠나면서 하게 된다. 정해진 거처가 있는 것도,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 걱정이 없었다.
곳곳에 집이 있는데, 그동안 집이 있는 곳에 내가 가려 하지 않고, 내가 서 있는 자리에 집을 끌어오려고 안달복달했던 어리석음을 되새기면서, 룰룰랄라 섬집도 기웃거려보고, 산속의 오두막도 기웃거리는 와중에 발닿은 곳이 지리산이었다. 그곳은 목적지가 아니었다. 삶에 목표란 있을 수 없듯이, 여정에도 목적지가 있을 리가. 지금 여기. 그 연속일 뿐.
여기까지 쓰다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계곡 매점에 맥주를 사러 나갔다 왔다. 1.5리터 페트병 하나가 5천원. 농협하나로보다 1200원이나 비싸지만 그곳까지 가는 기름값 계산하면 그게 그거다. 원고료로 맥주 두 박스를 준대서 택배를 기다렸는데, 통장에 숫자로 찍어주는 센스라니. 원고 대신에 모두에게 그 영상을 전송하고 싶은 봄의 계곡을 끼고, 매점 냉장고에서 목마르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맥주를 향해서 느긋하게 걸어가는데, 애써 가려 읽어야 할, 안티팬 많은 원고를 기다리느라 마른 체구를 더 축내고 있을, 잘 타지도 않는 잡지의 우중충한 편집장을 생각하는지, 봄바람이 볼을 스치면서 웃고 간다. 아침에, 이번에는 제발 자기 얘기 쓰지 말아달라고 본전도 못 찾을 전화를 한 것을 바람도 아는 모양이다. 이런 날에 마감이나 하고 있다니 제정신이야? 하면서 진열장 속 차디찬 페트맥주가 허구한 날 놀고먹는 나를 치켜세운다. 페트맥주를 살까, 병맥주를 살까, 2.34초 망설이다가 아부에 넘어가서 페트맥주 두병을 사들고, 내친김에 육개장 사발면 두개도 사고, 콧노래를 부르며, 길가에 새로 돋은 나물을 살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은, 뭐, 아유, 생략.
지리산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주조공장의 막걸리를 받아다 물에 타서 마셨다. 커다란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 원액 반, 대나무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샘물 반을 타서, 풀 베고 나무 써는 틈틈이 한 모금씩 마셨다. 신의 음료, 그 이름은 술!!!!
1월이었는데도, 지리산의 햇살은 눈부셨다. 바람은 거셌지만, 해만 있으면 춥지 않았다. 처음 그곳을 발견했을 때, 그 집은 마른풀에 덮여 있었다. 가톨릭 수사 출신의 목수가 첫 작품으로 일년에 걸쳐, 어떤 기계의 힘도 빌리지 않고 지게와 사람의 힘만으로 지었다는 그 집은, 예술이었지만, 늘 비어 있었다. 주인의 지인들이 며칠씩 혹은 몇달씩 묵어가곤 했다는데, 우리(나 플러스 알파)가 갔을 때는 그마저도 꽤 오래된, 그야말로 빈집이었다. 온갖 사람들이 그 집을 보고 탄성을 지르며, 예술이야를 연발했다 해도, 아무도 거기서 오래 살지는 못했던 것이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낫을 들었고, 집 주변의 마른풀들을 베어나가기 시작했고, 풀을 베면서 웃자란 내 허위의식도 같이 베어나갔고, 마침내는 나의 모든 생각의 잔가지들까지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귀틀집인 그곳의 아궁이는 건초 몇 더미에도 배불러했다. 지푸라기를 돌돌 말아 아궁이에 꽉꽉 채워넣고 불을 피우면 한겨울에 내복까지 벗고 이불을 걷어차는 황토사우나를 원없이 즐길 수 있었다. 방에 오래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방은 오로지 잠자는 곳이었다. 나는 내가 잠을 자야 내일이 오기라도 하듯이 해가 지면 잠을 잤고, 새벽빛이 새어들면 어김없이 잠을 깼다. 생전 처음으로, 매일 밤, 새로운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또 하루의 경이로운 날이 오기를. (벌써 몇주째, ‘zeitgeist’라는 독일어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이야기해보려고 했었는데, 샐 옆길이 너무도 많았을 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