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그린 것도 아닌데, 괜히 부끄럽고 화가 났다. 몇년 전 읽었던 한국 근대미술에 관한 책에 실린 도록을 보면서 그랬다는 말이다. 대부분이 초상화였고, 서양의 그것처럼 수세기 동안 단련된 예술가의 역사적 자의식이 배제된 채 기법과 묘사만 성급하게 따라한 그림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사실,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한국근대미술걸작전: 근대를 묻다> 전시회에도 딱히 관심이 없었다. 이중섭이나 박수근, 장욱진 같은 거장들의 작품은 다른 전시에서도 자주 접했기 때문에 이번 전시회를 챙길 메리트가 되진 못했다. 광화문쪽을 걷다가 전시회 포스터로 사용된 이쾌대의 그림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을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조선의 산하를 배경으로 화가 자신이 중앙에 우뚝 배치된 자화상인데, 흔히 생각하는 ‘조선의 색깔’인 붉은색과 흰색(흠, 이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김동인의 <붉은산> 때문인가)이 아니라 놀랍게도 청색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고정관념을 훌쩍 건너뛴 청량감이 두드러졌다. 그래서 이쾌대를 보러갔다.
예전에 본 이쾌대의 그림은 <군상>이 유일했다. 하지만 그 그림 안에 담긴 굵은 정서의 진폭과 생경한 주제의식과 형식미는 조화롭지 않은 듯했다. 큰 감동은 없었지만, 작가의 호쾌한 이름과 그림 자체의 특이한 구성 때문에 기억하는 정도였다. 이번 전시회에서 발견한 그의 사적인 그림들이 안겨주는 충격은 그래서 엄청났다. ‘월북화가’라는 무시무시한 원죄로 인해 1988년 월북화가 금지조치가 해제되면서 비로소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 화가의 기구한 인생도 인생이려니와 이번 전시회에서 이인성, 구본웅과 함께 단연 최고의 수준을 구비했던 화가로서의 출중한 재능은 실로 놀라웠다.
특히 <二人 肖像> 앞에선 한동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이쾌대의 부인이자 그가 가장 아끼는 모델이었던 유갑봉이 전면에, 화가 자신은 그녀의 그림자처럼 어둡게 처리된 그림이다. 내 앞쪽에서 걸어가던 어느 외국인 역시 <二人 肖像>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더니 공책을 꺼내어 크로키 필사를 시작했다. 나는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뒤로 돌아갔다.
아마도 이 그림 한편만으로도, 이번 전시회는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식민지의 모던함을 소재로 한 그 어떤 영화보다도 이 그림 한장이 주는 충격은 더욱 생생했다(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번에 처음 공개된 최지원의 목판화 <걸인과 꽃>도 절대로 놓치면 안된다). 오는 3월22일까지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다. 꼭 관람하실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