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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의 순간]
[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야구는 해치지 않아요, 다만…
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그렇게 말하면 어김없이 받는 질문이 있다. “야구 언제부터 봤어(요)?”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도 아니고, 어느 선수를 좋아하느냐도 아니다. 내가 여자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백이면 백 “언제부터 봤어요?” 하고 묻는다. 그 답부터 하자면 장종훈이 빙그레에서 주전자 나르던 시절부터 봤다. 광주가 어딘지는 몰라도 광주일고 무서운 건 일
글: 이다혜 │
200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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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티플레저]
[나의 길티플레저] 먹는 걸로 장난치면 죽~는다
식당으로 들어간다. 물잔이 보이네. 플라스틱 흰빛 컵. 최악이다.
일전에 홀로 지방 소도시 어느 식당엘 들어갔지. 사람이라곤 홀서빙 아주머니와 수염이 안 예쁘게 자라난 40대 남성뿐. 누런 플라스틱 컵이 내 앞에 놓인다. 원래 하얀색이었을 컵이 포도즙이라도 담아두고 하루 동안 물들인 뒤 대충 헹구어낸 것 같은 상태가 됐다. 나는 비분강개하지 않고 말한다.
200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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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오픈칼럼] 이쾌대와 <二人 肖像>
촌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그린 것도 아닌데, 괜히 부끄럽고 화가 났다. 몇년 전 읽었던 한국 근대미술에 관한 책에 실린 도록을 보면서 그랬다는 말이다. 대부분이 초상화였고, 서양의 그것처럼 수세기 동안 단련된 예술가의 역사적 자의식이 배제된 채 기법과 묘사만 성급하게 따라한 그림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사실,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한국근대미
글: 김용언 │
200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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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물병은 물병이다
클로드 모네를 수련 중독자라 부르고, 에드거 드가를 발레리나 오타쿠라고 놀리는 무례가 관대하게 용인된다면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 화가 조르지오 모란디(1890~1964)는 다음과 같이 불릴 법하다. “그릇을 늘어놓는 100만 가지 방법을 고안한 화가.” 좁다란 테이블 위에 세심히 배치된 호리호리한 물병, 납작한 깡통, 입이 넓은 찻잔 등 갖은 생김새의 용기
글: 김혜리 │
200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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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지리산의 그 빈집
내 소유의 집이 없으니 천하가 내 집이 되더라는 경험을, 도시를 떠나면서 하게 된다. 정해진 거처가 있는 것도,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 걱정이 없었다.
곳곳에 집이 있는데, 그동안 집이 있는 곳에 내가 가려 하지 않고, 내가 서 있는 자리에 집을 끌어오려고 안달복달했던 어리석음을 되새기면서, 룰룰랄라 섬집도 기웃거려보고, 산속의 오두막도 기웃
글: 최보은 │
200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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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영화읽기] 브뤼겔을 향한 강한 오마주
*스포일러 있습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며 피터 브뤼겔의 <게으름뱅이의 천국>, 혹은 <장님들의 추락>을 떠올린 적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를 보면서도 그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 플롯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무척이나 골몰했고, 그 영화의 몇 장면들은 스스
글: 이지현 │
200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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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친구 그의영화]
[나의 친구 그의 영화] 우리 다같이 신나게 헤드뱅잉
망각의 삶이라. 지난호 혁 옵바의 칼럼은 그런 절규로 끝났다. 뭔가 신신애스러운,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사아아안다를 연상시키는 장중한 내용이었다. 그러다보니까 봄비도 아닌 것이, 하지만 겨울비라고는 절대로 부르기 싫은 뭔가가 하늘에서 떨어지던 어느 저녁의 대화가 떠올랐다. 기자와 과학자와 시인과 소설가 등으로 이뤄진, 매우 통섭
글: 김연수 │
2009-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