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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팔월의 미친 세상
미친 짓이었는지 모른다. 관측 사상 가장 무더운 여름이 될 거라고 세계기상기구(WMO)가 경고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꼬박 1주일,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를 맨몸으로 걷겠다는 각오보단 모두들 쉬러가는 황금 휴가철에 ‘이 짓’을 하겠다는 각오야말로 쉽지 않았으리라.
우리는 걸었다. 서귀포 강정마을에서 제주시 탑동까지 돌았다. 반은 서쪽으로, 또 반은 동쪽
글: 노순택 │
201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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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숲, 아스팔트, 49광구
“잠시만요!” 무언가 확인할 게 있다는 듯 그는 덤불을 헤치고 들어갔다. 거미줄을 걷고 날파리떼를 쫓으며 따라 들어간 그곳에 작은 터가 있었다. “아직 멀쩡하네!” 남자는 웃었다. 알 수 없는 뿌듯함과 회한 같은 것이 얼굴에 스쳤다.
움막이었다. 아름드리나무에 줄을 묶고 대나무와 비닐을 엮어 만든 초라한 움막. 몸을 뉘일 만한 너비조차 안 되는 곳이었
글: 노순택 │
201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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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새야, 새야
작은 새 한 마리가 뽀르르 손안에 날아들었다. 살짝 입김을 불어주었는데 손 위에 똥을 찍 싸더니 그만 죽고 말았다. 좋아할 틈도, 똥을 쌌다 나무랄 틈도 없이 죽은 것이었다. 곁에 있던 여자친구가 새를 죽이면 어떡하냐며 발을 동동 구르며 나무랐다. 나는 새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새를 죽였다는 사실은 더욱 믿을 수 없었다. 녀석을 손에 안은 채
글: 노순택 │
201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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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나쁜 끝은 없다 착한 끝은 있다
어쩌다가 세명의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내 어머니, 아내의 어머니, 한 동네 사시는 그 어머니. “모신다”는 말은 거창하고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으므로 수정한다. 어쩌다가 세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이 말도 이상하다. 바꿔 말한다. 어쩌다가 세 어머니와 만나고 있다.
사실 ‘그 어머니’를 잘 모른다.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사시는 그 어머니는,
글: 노순택 │
201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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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종이호랑이 두 어른
아니 될 일이라고 했다. 나이를 먹었으니 발 뻗을 데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뜻은 고마우나 돌아가라는 얘기였다. 입이라도 맞춘 걸까. ‘두 어른’의 말씀이 같았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허나 우리 고집도 셌다. 예술이 별건가. 완고한 세상에 금을 내려는 몸부림이 예술이라면, 당신들의 삶은 온통 불순하였고, 거리에 내던진 말과 몸짓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글: 노순택 │
20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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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찍히는 모욕 찍는 모욕
사진사들은 흔히 먹잇감을 찾아 눈을 번뜩이는 승냥이로 치부되곤 한다. 그들은 어슬렁댄다. 누군가의 주검이나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장면은 외면하기 힘든 훌륭한 사냥감이다. 으르렁 찰칵, 크르렁 찰칵. 카메라를 든 승냥이들은 찰칵거림으로 으르렁댄다. 허나 그것이 맛있다!는 감탄사일까.
1993년 아프리카 수단에서 굶주려 엎드린 아이와 아이가 죽기를 기다리
글: 노순택 │
20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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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초인종을 마구 누른 친구들
수인번호 345번. 야반도주한 사장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 죄’로 벌금 140만원을 선고받고, 부당한 돈을 납부할 수 없어 감옥으로 들어갔던 기륭전자 해고노동자 유흥희. 그녀는 보름 동안 “345번!”으로 불렸다.
그녀를 배웅하고 돌아서던 친구들의 얼굴에 드리웠던 허망한 웃음과 그늘을 기억한다. “오랜만에 휴식을 준 셈 치자”며 서로 위로하던
글: 노순택 │
2016-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