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 345번. 야반도주한 사장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른 죄’로 벌금 140만원을 선고받고, 부당한 돈을 납부할 수 없어 감옥으로 들어갔던 기륭전자 해고노동자 유흥희. 그녀는 보름 동안 “345번!”으로 불렸다.
그녀를 배웅하고 돌아서던 친구들의 얼굴에 드리웠던 허망한 웃음과 그늘을 기억한다. “오랜만에 휴식을 준 셈 치자”며 서로 위로하던 이들은 이틀 뒤 끔찍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수감 과정에서 ‘알몸 검신’이 자행됐고, 항의하는 그녀를 교도관들이 달려들어 강제 굴복시켰다는 얘기였다. 인권침해에 항의하는 유흥희에게 누군가 내뱉었다는 비아냥은 비수가 되어 꽂혔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나보네. 하지만 세상이 변했어!”
친구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빼올 수도 없었다. 벌금을 대납하면 그녀는 나온다. 허나 그것은 그의 신념을 거스르는 일이다. 인권유린을 폭로하고,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했지만 감수성을 잃어버린 이 사회의 촉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간은 잘도 간다. 어느새 훌쩍 보름이 흘렀다. 5월12일 0시1분에 그녀는 나올 예정이었다. 친구들은 조용히 마중 가려 했다. 헌데 아니란다. 규정이 바뀌었단다. 새벽 5시에 내보내겠단다. 친구들은 한시라도 빨리 유흥희를 보고 싶었다. 흉내라도 내듯 감옥의 초인종을 누르기로 했다. 11일 밤 9시, 서울구치소 앞마당에 모여든 친구들은 유흥희를 기억하는 사진과 동영상을 함께 보고,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0시를 기해 초인종을 마구 누르겠다는 경고가 통하길 바랐다. 조금은 통할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격렬한 항의, 그것은 친구들이 누른 초인종이었다. “최동렬 회장 나오라”던 그녀의 초인종은 “유흥희 나오라”로 변주되어 감옥 앞에 울려 퍼졌다. 진압경찰이 투입되고, 사람들은 포위되었다. 난리법석의 와중에도 한편에선 긴 밤을 버티기 위한 김치부침개가 지글지글 부쳐지고.
먼동이 텄다. 그녀는 새벽 5시에 나왔다. 환호성을 터뜨리며 맞이하는 친구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하도 시끄러워서, 한숨도 못잤어. 그런데 수감자들은 좋아하더라.”
사진은 조용하다. 불행히도 초인종 소리를 담지 못한다. 감옥 앞마당 김치부침개의 고소함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