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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치욕
반민족의 문제를 말할 때는 반드시 나이를 밝히고 시작해야 옳을 것 같다. 나는 1948년생으로 올해 55살이다. 전쟁 때 유아기를 보냈고 이승만 치하에서 자라나 박정희 유신 통치 밑에서 한평생 신문기자를 했고 전두환 시절에 엎드려 있었다. 더럽고 견딜 수 없는 세월을 살았지만, 그래도 일본이 물러가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해 태어난 운명에 나는 감사한다
200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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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놈들과 그년들
좌파 남성과 페미니스트 여성 사이의 긴장은 종종 숙명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좌파 남성들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을 ‘부르주아’라 밥맛 없어하고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좌파 남성들을 ‘가부장 좌파’라 밥맛 없어한다. 좌파 남성 가운데 (여성해방 없는 인간해방을 좇는) ‘가부장 좌파’가 실재하고 페미니스트 여성 가운데 (인간해방 없는 여성해방을 좇는) ‘부르주아’가 실
200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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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 페미니즘`과 `그 사회주의` (1)
두주 전 김규항이 이 지면에 ‘그 페미니즘’이라고 표현한 페미니즘은 나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나의 취향에 영 맞지 않아서 다른 세계의 일 같고 그래서 별 ‘관심’이 없다. 8년째 육아와 가사를 분담해 오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조차 설득력이 없다면, 그 페미니즘은 무언가 공허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래서 ‘욱’할 때면 “이
200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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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까치둥지
일산에 살고 있는 나는, 저녁이면 일몰의 강화쪽 하늘로 사라지는 여객기들을 오랫동안 바라보곤 했다. 노을진 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종적을 감추는 여객기들은 이 세계의 대륙간 하늘을 횡단하는, 힘센 물고기들처럼 보였다. 여객기들은 문명한 대도시들 사이의 전령으로서 아름다워 보였고, 알 수 없는 먼곳을 향한 충동으로 일상의 진부함을 헝클어놓곤 했다.중국 여
200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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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들에겐 유감스런 얘기겠지만, 내 주변의 진보주의자 남성들은 하나같이 주류 페미니즘(정확하게, 90년대 이후 한국의 주류 페미니즘)을 마땅치 않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일 뿐 여성이 처한 성적 억압엔 무감각한 형편없는 남근주의자들인 건 아니다. 그들은 적어도 ‘여성100인위원회’의 활동을 원칙적으로 지지하고 <밥꽃양>을
200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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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김두수 그리고 은둔의 (탈)정치
김두수라는 ‘가수’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986년부터 1991년 사이 세장의 음반을 발표했지만 히트곡이라고 할 만한 곡은 없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은 묘한 분위기에 사로잡혀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그의 음악적 정서는 ‘한국적’이고, 그건 국악기를 사용한다거나 5음계의 선율을 고집한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200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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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이념
새학기가 시작되자 각 대학의 총학생회가 출범했다. 학생회관 건물에는 붉은 글씨로 쓴 대형 현수막들이 걸렸다. 미군은 물러가라, 신자유주의 반대, 시장경제 반대, 노동자 파업 지지, 장애자 이동권 보장하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라…. 대체로 이 같은 절규들이다.이번 학기에는 여러 대학에서 비운동권이 총학생회를 장악했고, 비운동권 총학들은 연합체를 결성할
2002-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