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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
2002-05-22

김훈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반민족의 문제를 말할 때는 반드시 나이를 밝히고 시작해야 옳을 것 같다. 나는 1948년생으로 올해 55살이다. 전쟁 때 유아기를 보냈고 이승만 치하에서 자라나 박정희 유신 통치 밑에서 한평생 신문기자를 했고 전두환 시절에 엎드려 있었다. 더럽고 견딜 수 없는 세월을 살았지만, 그래도 일본이 물러가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해 태어난 운명에 나는 감사한다. 나는 내가 체험하지 못한 시대의 고통에 관하여 말해야 하는 일이 두렵다. 이 두려움은 내가 체험한 시대의 두려움에 바탕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명색이 늙은 언론인이고 또 가끔씩 소설도 쓴다. 좋다는 언론사의 편집국장도 해봤다. 내가 지금의 신분과 역할로 일제 시대를 살았다면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이 되었을까를 생각하는 일은 식은땀 난다. 아아, 나는 대체 어떠한 모습으로 그 시대를 살아냈을까. 그런 괴로운 질문을 애써 외면한 채, 나는 그저 1948년생의 운명에 감사한다. 그리고 내가 회피해버린 그 괴로운 질문은 친일에 관한 나의 생각을 교란시킨다. 아마도 이 글은 비틀거리며 나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인간의 역사 속에 불가피하게 개입하는 치욕을 긍정한다. 치욕을 도려내버린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언어화된 이념일 것이고, 역사는 치욕과 더불어 비로소 온전할 터이다. 나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그 애달픈 피난 행궁을 긍정한다. 나는 오랑캐 앞에서 땅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빌면서 국토와 백성을 보존한 인조 임금의 고뇌와 그날 천지간에 사무친 궁녀들의 통곡 소리를 긍정한다. 나는 패배주의를 정서화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민족의 역사적 현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나는 내 조국의 역사 속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졌던 사대주의의 생존술을 긍정한다. 대륙의 왕조가 바뀔 때마다, 강성한 신흥 왕조들의 그 가공할 군사력은 어김없이 한반도를 내습했다. 민족의 생존을 유린하는 강자들을 향하여 저항과 사대를 반복하는 내 약소한 조국의 약소하지 않은 운명을 나는 긍정한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긍정과 사랑을 일제 36년의 식민지 조국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또 대답하지 못한다. 나는 다만, 국망으로부터 한 세기 뒤에 태어나서 아직도 유효한 고통으로 살아 있는 과거의 치욕을 추스르려는 한 후인의 마음을 말하려 한다.

나는 1960년대의 그 설화적인 가난 속에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나는 김팔봉이나 임화 같은 선배들의 책을 읽고 그분들의 생애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친일과 항일은 파행적으로 거듭해가면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당대의 절망에 좌충우돌하던 그분들의 생애를 읽으면서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삶의 비극성에 전율했다. 나는 당대사의 모순에 짓밟히고 또 일어서고 또 짓밟히는 그분들의 삶의 궤적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나는 다만 전율했고, 삶의 비극 앞에서 경건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경건성이 무력한 것으로 폄하되어도 하는 수 없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내 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상해와 중경에서 김구 선생을 모셨던 임정의 청년이었다. 그분의 독립운동은 군사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역사의 정통성에 대한 그분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분은 김구 일행과 함께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동포들은 모두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인들 밑에서 노예처럼 비굴하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그 비굴한 대다수의 동포들이 바로 민족과 국토와 언어를 보존한 힘이었다”라고. 그때, 나는 내 아버지의 늙음을 사랑할 수 있었다. 광복 뒤 반세기가 지났다. 세월이 흘렀으므로 나는 내 나이에 관계없이 내 반민족 선배들보다 더 역사 속에서 늙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당대의 사람들이 친일과 반민족의 고통을 말할 때, ‘늙음’의 바탕 위에서 말해주기 바란다.

내 말은 그 ‘늙음’의 마음으로 친일과 반민족의 치욕을 뭉개버리자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은, 그 견딜 수 없는 치욕을 치욕으로써 긍정하자는 말이다. 치욕을 긍정하는 또 다른 치욕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그 또한 감당되어야 할 치욕인 것이다.

치욕을 긍정하기 위하여서는, 교과서에 그 고통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가장 온당한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아이들이 자라나서 스스로 그 치욕의 역사를 알게 될 때의 혼란과, 제도에 대한 불신과 역사에 대한 환멸이 이 고통스런 논쟁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이미 어른이 되어서 늙어가고 있다. 우리는 사실의 바탕 위에서만 화해하거나 청산할 수 있다. 화해할 수 없는 대목이 있을 것이다.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불화와 단죄조차도 사실의 바탕에 입각할 수밖에 없다. 마침내 화해할 수 없는 것들과의 불화는 역사를 도덕적으로 긴장시켜줄 수 있다. 그리고 치욕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사람들에 의하여 불화는 더욱 깊어져가고 있다. 김훈/ 소설가·<한겨레> 사회부 기자 hoo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