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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이상한 나라의 아스토
원래 아기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저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책임져야 할 생명을 덜렁 세상에 내놓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 같은 놈을 세상에 또 하나 토해놓는 게 세상을 위해서도 별로 좋을 것 같지 않았다. 불쌍한 세상이 대체 무슨 죄가 있는가? 하지만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보채는 아내의 성화 덕에 결국 애를 갖게 되었다. 겁나게 먹어
글: 진중권 │
200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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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가브리엘의 진혼곡
롤랑 조페의 영화 <미션>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라고 명명한 ‘새로운’ 대륙을 ‘발견’함으로써 그 대륙 원주민 전체에 발생한 끔찍한 사태의 한 단면을 다루고 있다. 그 대륙과 함께 그들은 ‘발견’되었고, 그 대륙이 유럽인들의 것이 됨과 함께 그들의 운명 또한 유럽인들의 손에 들어갔다. 총탄에 의해서든 병균에 의해서든 먼저 죽은 자들은 차라리 나
글: 권은주 │
200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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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지역감정의 윤리와 정치
황당하다. 민주당과 우리당이 싸운다. 거기에 보수 야당과 보수 신문이 뛰어든다. 한나라당이 민주당과 함께 정부를 압박하고, 조선일보가 민주당을 도와 우리당을 공격한다. 고립된 정부와 소수 여당을 상대로 한나라당-조선일보-민주당이 삼각편대를 이루어 이렇게 긴밀히 협력한다. 누가 그랬더라? 민주당은 자칭 호남의 정서를 대변하는 당,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반(反
글: 진중권 │
200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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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목욕탕
가끔 교회에 나간다. 육신의 때를 목욕탕에서 벗겨내듯이 마음의 때는 교회에서 벗겨내는 거다. 목욕탕보다 요금이 비싼 감이 있으나, 말씀으로 영혼의 때를 벗겨내는 일이 어찌 물로 육신의 때를 씻는 일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가능하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교회에 나가는 게 좋다. 그래야 한 주일 동안 지은 죄를 주님 앞에서 깨끗이 씻어내고, 한결 개운해
글: 진중권 │
200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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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이등병의 편지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내가 제대한 게 1983년이니 올해는 군복을 벗은 지 꼭 20년이 된다. 몇년 전부터 군대문제와 관련된 일을 많이 하게 되면서 <이등병의 편지>는 내
글: 한홍구 │
200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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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선택
홍기선을 만났다. 놀랍게도 그는 그대로다. 수더분한 외모에서 어눌하지만 지적 결기가 느껴지는 말씨까지. 그를 10년 전에 한번 만났다. 이효인, 이정하들과 함께였을 것이다. 나는 간간이 그를 떠올리며 그의 근황을 궁금해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과연 그도 변했을까’ 궁금해했다. 10년 동안 홍기선의 동료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두 변했다. 영화와 현
글: 권은주 │
200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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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어떤 협박
한 사람이 포승줄에 묶여 조사를 받는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도, 남의 등을 치지도, 남을 때리지도 않았다. 탈세를 한 것도, 밀수를 한 것도 아니고, 마약을 판 것도 아니다. 하다 못해 이웃집 여자랑 바람피우다가 들통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포승줄에 묶여 있다. 왜 그럴까? 난 모르겠다. 그를 잡아다가 조사하는 자들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래서 그 이유를
글: 권은주 │
2003-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