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포승줄에 묶여 조사를 받는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도, 남의 등을 치지도, 남을 때리지도 않았다. 탈세를 한 것도, 밀수를 한 것도 아니고, 마약을 판 것도 아니다. 하다 못해 이웃집 여자랑 바람피우다가 들통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포승줄에 묶여 있다. 왜 그럴까? 난 모르겠다. 그를 잡아다가 조사하는 자들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래서 그 이유를 그들은 그에게 묻기로 했다. “당신이 왜 조사를 받아야 하는가?” 얼마나 초현실주의적인 상황인가. 근데 이건 부조리극의 한 장면이 아니다. 이 땅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송두율 교수가 구속됐다. 참으로 너절하게도 그 사유가 국보법 위반이라고 한다. 북한에 다녀오고, 노동당에 가입을 하고, 여행 및 학회 운영 경비 받아쓰고, 북한의 학자들과 몇번 학술회의 열고, 수령님 초상집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뿐이다. 개성에 출장을 가고, 평양에 쇼핑을 가고, 금강산에 소풍을 가는 시대에, 겨우 이 정도로 인신을 구속할 사유가 되겠는가? 당연히 안 된다. 검찰에서도 이 정도의 낯간지러운 사유로는 인신을 구속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왜 잡아 가둬야 하는가?
검찰에서 알고 싶은 게 바로 그거다. “대체 우리는 왜 송 교수를 잡아다 조사를 해야 하는가?” “우리가 그를 구속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무엇인가?” 이 실존적 물음이 검찰에서 밝혀내야 할 이 사건의 핵심의혹이다. 온갖 자료를 뒤지며 수사를 했지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는 누굴까? 송두율! 그래서 그들은 일단 구속부터 하고 송 교수에게 묻기로 했다. “송두율, 당신이 여기에 잡혀와 조사를 받는 이유를 대라.” 얼마나 황당한가. 초현실주의 예술가를 가진 나라는 더러 있어도, 초현실주의 검사를 가진 나라는 오직 대한민국밖에 없을 게다.
송 교수를 구속하려면 제대로 된 사유를 제시해야 한다. 자기들이 장담했듯이 그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북한의 권력 서열 23위라는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 하지만 떠들썩하게 그 난리를 치고도 검찰에서는 그 부분을 입증하는 데에 실패한 모양이다. 이렇다 할 확증도 못 잡았으면서 검찰은 덜컥 구속 영장을 신청했고, 무슨 이유에선지 법원에서는 덜렁 영장을 내주었다. 제 발로 걸어 고향에 들어온 이 학자에게 ‘도주의 우려’가 있고, 국정원에 잠입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본 모양이다. 하긴, 초현실주의 검사도 있는데, 초현실주의 판사라고 왜 없겠는가?
저들은 자기들이 밝혀내지 못한 것을 송 교수에게 밝히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당신이 서열 23위 노동당 후보위원이라는 사실을 밝혀낼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그러니 당신이 구속당해 마땅한 사유를 당신 스스로 밝혀라.” 그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자기들이 져야 할 입증의 책임을 피의자(?)에게 떠넘기는 격이다. 그렇다면 좋은 수가 있다. 수사권을 아예 송 교수가 넘겨받아, 검사들을 포승줄에 묶어놓고 마구 불라고 닦달을 하는 거다. 제일 먼저 너희들이 뭘 불어야 할지 스스로 불라고 하면 어떨까?
검찰은 예술만 하는 게 아니다. 무대 위로 진출해 부조리극 연출을 하다가, 이제 종교계에까지 진출해 사제 개업을 했다. 고해성사를 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는 것이다. 태극기 아래 네 모든 짐을 내려놓고, 주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라. 이로써 검찰청사는 졸지에 성령 충만하고 은혜 넘실거리는 성전이 된다. 하기 싫다는 사람, 기어이 ‘전향’시켜서 황장엽처럼 반공 부흥회장 찾아다니며 ‘간증’이나 하며 먹고사는 애국 전도사를 삼을 작정인가? 검찰의 임무가 기껏 이교도를 ‘대한진리교’로 개종시키는 데에 있단 말일까? 할 일 되게 없다. 시간이 막 남아돈다. 거기도 구조조정 좀 해야겠다.
“해방 이후 최대의 간첩”이라더니, 혐의 내용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구체적인 ‘행위’가 전혀 없다. 그래서 기껏 머릿속의 ‘생각’을 문제삼는 거다. 나리들께서 송 교수 저서의 이적성을 검토하겠단다. 자기들이 학술서적 심사위원씩이나 할 주제가 된다고 믿는 걸까? 무지 중에서 가장 무식한 무지가 이렇게 제 주제를 모르는 것이다. 지금 검찰이 송두율 교수를 붙잡아놓고 하는 짓은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야만적 의식이다. 좋게 말하면 골 빈 보수층들의 심기를 편안하게 해드리는 장수만세 위문공연, 나쁘게 말하면 허접한 혐의로 구속해놓고 석방과 전향을 맞바꾸자고 흥정하는 야쿠자 협박질이다. 그만하면 됐다, 마이 무구따. 애먼 사람 그만 괴롭히고, 이제 좀 풀어주라. 뭘 더 바라는가? 진중권/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