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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의 편지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내가 제대한 게 1983년이니 올해는 군복을 벗은 지 꼭 20년이 된다. 몇년 전부터 군대문제와 관련된 일을 많이 하게 되면서 <이등병의 편지>는 내 애창곡이 되었다. 이 노래에서 내 마음을 제일 울린 부분은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라는 대목이다. 군대 갔다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음직한 이 의례를 나는 치르지 못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바로 군대에 끌려갔기 때문이다. 중간에 영등포서에서였던가 부모님과 짧은 면회를 했을 뿐이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내려가시다 돌아보는 어머니의 눈가에 번지던 눈물자국은 지금도 선명하게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일까, <이등병의 편지>는 내게는 쉽게 부를 수 없는 애창곡이다.

푸른 제복 속에 젊은 날의 생을 가둔 이등병들은 없는 시간을 짜내어 편지를 쓴다. 어느 이등병의 편지가 절절하지 않을까마는 기독교회관 7층에서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항의하여 농성 중인 욱수골 촌놈 강철민 이등병이 대통령께 드린 편지는 내 가슴을 친다. 편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국헌을 준수한다는 선서를 한 대통령은 침략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을 어겨가며 파병을 결정하고, 군대에서 보면 새까만 이등병은 하늘같은 군통수권자에게 감옥 갈 각오를 하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간언을 드려야하는 현실은 너무나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백일 휴가를 나온 강철민 이등병이 파병 반대를 위해 부대 복귀를 거부하고 농성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한마디 한마디 말씀드릴 때마다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신 어머님은 막상 다음날 강철민 이등병이 일을 치자 농성장에 오셔서 통곡을 하셨다. 강철민 이등병도 어머니의 눈물로 눈물로 물레방아가 돌아가며 자신의 가슴을 짓찧는다며 몹시 울었다. 늦은 밤 농성장을 찾은 나는 어머님과 마주 앉아서도 같이 한숨 쉬는 것 이외엔 어떤 위로의 말씀도 드릴 수 없었다.

이등병이 이라크 파병에 자원하면 월급은 100배가량 올라 200만원이 넘고, 복무기간도 단축된다고 한다. 침략전쟁의 하수인으로 징집된 사병을 보내며 이런 당근을 제시하는 짓거리는 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당 800원 안팎의 말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55만 사병들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전체 군인의 80%인 사병들의 인건비는 16조원이 넘는 2002년 국방예산에서 0.8%에 불과하다. 3만7천 주한미군을 위해 정부가 현금으로 주는 분담금이 6천억원에 육박하는데, 55만 사병들의 1년 급여는 그 1/4에도 못 미치는 1300억원인 게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탈영병이 된 강철민 이등병은 이제 감옥에 가야 한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킨 자들, 이라크 어린이들의 머리 위에 포탄을 퍼부은 자들, 그리고 가당치 않은 미국의 국익을 한국의 국익이라 우기며 우리 병사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보내지 못해 안달하는 자들은 따슨 방에서 더운 밥을 먹는다. 이런 상황에서 비판자들로부터나 지지자들로부터나 너무 말이 많아 걱정을 듣는 우리 대통령께서는 온몸을 내던져 쓴 이등병의 편지에는 아무런 말씀이 없다. 감옥에서 새로운 젊은 날의 생을 시작해야 하는 이등병의 편지는 허공을 맴돈다.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