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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영화의 폭군
운율, 리듬, 음조, 배음. 에이젠슈테인이 사용한 몽타주 종류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다. 내 관심은 그가 어느 헝가리 영화이론가와 주고받은 논쟁에 가 있다. 갑자기 이 논쟁이 다시 생각난 것은, 피터 그리너웨이가 남기고 떠난 말 때문일 게다. “미래의 영화는 텍스트, 프레임, 배우, 카메라의 4대 폭군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무슨 뜻일까?
글: 진중권 │
200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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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화가의 죽음, 주체의 죽음
“네빌씨를 사적으로 만나, 나와 관련한 쾌락의 요청을 충족시켜주기로 한다.” 허버트 백작부인은 이런 조건으로 네빌과 계약을 맺는다. 약속대로 백작의 영지를 열두장의 그림에 담던 중, 네빌은 자신이 이미 그린 곳에 자꾸 그림을 그릴 때에는 없었던 물건들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다. 이 원치 않는 변화에 불평을 하면서, 충실한 자연주의자답게 그는 새로 나타난
글: 진중권 │
200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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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신의 조건, 천재의 조건
20세기를 맞는 1900년 1월1일,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여객선의 피아노 위에서 갓난아기가 발견된다. 화부(火夫)의 손에 맡겨진 아이는 ‘1900’이라 불리며 배의 기관실에서 파도를 요람으로, 소음을 자장가로 알고 자란다. 아이가 처음으로 음악을 접하는 것은 사고로 숨진 아버지의 장례식 날. 갑판 위의 아이가 위쪽 일등석에서 들려오는 음향을 향해 고개를
글: 진중권 │
200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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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인과를 파괴하는 시공간의 모험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영화는 다소 촌스럽게 카오스 이론의 직접적 인용으로 시작한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나비효과’란 초기 조건에 민감한 복잡계의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다. 영화에서는 초기 조건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에반이 과거로 돌아가 기억을 약간 수정할 때마다 그가 되돌아온 현실에서는 엄청나게 다른 결
글: 진중권 │
200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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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최종적 진리를 믿는가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여자의 모자를 보고, 끊어진 밧줄을 보고, 이윽고 칼에 찔려 죽은 사무라이의 시신을 본다. 패닉에 빠진 나무꾼은 한달음에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를 하고, 이로써 종잡을 수 없는 해괴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살인사건에 연루된 네 사람의 진술은 모두 확보됐다. 하지만 동일한 사건을 목격한 그들의 진술은 크게 엇갈리며, 서로 모순되기까
글: 진중권 │
200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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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누군가 내 몸에 이름을 써준다는 것은
‘필로우 북’은 고대 일본의 서책인 <마쿠라노소시>(枕草子)이다. 책의 저자는 헤이안 시대의 궁녀였던 세이 쇼나곤(淸少納言: 965-1010?). 그가 궁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어놓은 메모를 모아 만든 책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자신의 영화(1996)에서 그리너웨이는 곳곳에 이 책의 구절을 깔아놓는데, 그 인용구들은 쇼나곤의 섬세한 감성
글: 진중권 │
200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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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진중권의 이매진] 비행과 영화로 영원을 꿈꾼 남자
“q, u, a, r, a, n, t, i, n, e….” 욕조 위에 알몸으로 선 아이에게 엄마가 다가와 아이의 몸을 닦아주며 한 글자씩 철자를 늘어놓는다. 영화의 첫 대사(‘멸균’)는 아이의 일생을 지배하다 결국 그를 파멸로 몰아갈 강박장애(OCD)를 암시한다. 하워드 휴스는 평생 세균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았다. 이는 같은 증세를 가졌던 어머니
글: 진중권 │
2007-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