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영화는 다소 촌스럽게 카오스 이론의 직접적 인용으로 시작한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나비효과’란 초기 조건에 민감한 복잡계의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다. 영화에서는 초기 조건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에반이 과거로 돌아가 기억을 약간 수정할 때마다 그가 되돌아온 현실에서는 엄청나게 다른 결과가 벌어져 있다. 이것이 각각 다양한 결말로 귀결되는 멀티플 플롯의 생성기가 된다.
피크노렙시
7살 때부터 에반은 ‘블랙아웃’을 경험한다. 자신의 미래를 그린 그림 속에서 에반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두 사람 옆에 칼을 들고 서 있다. 유치원 교사가 왜 그런 그림을 그렸냐고 묻자, 에반은 자기가 그런 그림을 그린 기억이 없다고 대답한다. 두 번째 블랙아웃은 집에서 벌어진다. 어머니 안드레아는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멍하니 서 있는 에반을 발견한다.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묻자, 이번에도 에반은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한다.
세 번째 블랙아웃의 장소는 여자친구 켈리네 집의 지하실. 켈리의 아버지는 ‘로빈 후드’ 영화라는 명목으로 제 딸과 에반의 옷을 벗겨놓고 아동 포르노를 찍는다. 켈리는 울고 있고, 에반은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아들의 이상한 행동을 관찰한 어머니는 병원을 찾아가고, 의사의 권유대로 에반을 정신병원에 갇힌 아버지에게 데려간다. 대화를 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에반에게 달려들고, 순간 에반은 네 번째 블랙아웃을 경험한다.
의사는 에반의 블랙아웃을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로 설명한다. 현실에서 받은 자극이 너무 강할 경우, 인간은 블랙아웃으로 자신을 천문학적 시공간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과잉자극에서 자신을 보호하게 된다는 것. 전형적인 ‘피크노렙시’의 상황에서 의사가 단절된 기억을 잇는 방법으로 권하는 것은 일기를 쓰는 것. 의사의 권유대로 에반은 일기를 쓰게 되고, 이 일기장이 훗날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의 역할을 하게 된다.
트라우마
영화는 에반의 13살 시절로 이어진다. 에반, 켈리, 그녀의 오빠 토미, 약간 멍청해 보이는 친구 레니. 아이들은 켈리네 집 지하실에서 꺼내온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인 뒤, 어리버리한 친구 레니에게 남의 집 우편함에 집어넣으라고 시킨다. 심지가 타들어가는 동안에 마침 집에 도착한 주인 여자가 아기를 안은 채 우편함으로 다가가고, 순간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한다. 일을 저지른 레니는 쇼크에 빠져 병원으로 실려가고, 에반은 또 한번 블랙아웃을 경험한다.
어느 날 에반, 켈리, 레니는 숲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토미를 발견한다. 변태적 아버지의 학대 때문에 폭력적으로 변한 토미는 자루에 개를 집어넣은 뒤 그 위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이려 한다. 에반과 켈리가 말리려고 달려드는 순간, 토미는 몽둥이를 휘두른다. 먼저 켈리가 거기에 맞아 쓰러지고, 이어 에반 역시 공격을 받는다. 여섯 번째 블랙아웃에서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는 옆에서 이미 불에 타서 재로 변한 개의 유해를 본다.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이사를 하기로 결심한다. 트럭을 타고 떠나는 날, 에반은 백미러를 통해 달려오는 켈리의 모습을 보고 노트에 “너를 위해 다시 돌아올게”라 적어 차창에 갖다 댄다. 그리고 7년 뒤, 에반은 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변해 있다. 그는 그 동안 단 한번도 블랙아웃을 경험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우연히 침대 밑에서 찾아낸 어린 시절의 일기장을 읽으며, 그는 문득 블랙아웃으로 지워졌던 기억의 편린을 떠올리게 된다.
평행세계들
끊어진 기억을 잇기 위해 그는 레니를 찾아가고, 어린 시절의 충격으로 자폐적으로 변한 레니에게서 자신이 떠올린 기억의 편린이 실제로 벌어진 일임을 깨닫게 된다. 끊어진 기억을 더 잇기 위해 그는 어린 시절의 마을로 켈리를 찾아간다. 그가 알고 싶었던 것은 지하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는 것. 하지만 에반을 통해 어쩔 수 없이 과거를 기억하게 된 켈리는 충격으로 자살을 하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 에반은 기억의 바다로 뛰어들어 시간여행을 감행한다.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간 그는 켈리의 아버지에게 딸을 학대하면 나중에 딸이 자살을 하게 될 거라 경고한다. 초기 조건을 바꿔주자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에반과 켈리는 다정한 캠퍼스 커플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했다. 딸을 학대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오빠인 토미를 더 가혹하게 대했고, 전과자가 되어 둘 앞에 나타난 토미는 이들에게 행패를 부린다. 에반스는 엉겹결에 토미를 살해하고, 그 결과 교도소에 갇힌다.
이를 번복하기 위해 에반은 또다시 시간여행을 감행하여, 개를 불태우려는 토미 앞에 나타난다. 그는 ‘이런 짓을 하다가 소년원에 가면, 켈리 혼자 변태적인 아버지의 손에 맡겨두는 꼴이 되지 않겠냐며 토미를 설득한다.’ 토미가 개를 풀어주는 순간, 레니가 그의 등을 찌른다. 개를 담은 자루의 줄을 풀어주라고 칼을 들려준 것을, 그를 살해하라고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이 사건으로 레니는 감옥에 갇히고, 오빠의 죽음을 목격한 트라우마로 켈리는 창녀가 된다.
한 개의 현실태와 다섯 개의 잠재태
영화는 이런 식으로 여섯개의 가능세계를 보여준다. 그때마다 에반의 뇌는 놀라운 구조의 변화를 겪는다. 그는 기억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수정할 뿐이나, 초기 조건의 이 작은 변화가 초래하는 결과는 엄청나다. 그렇게 달라지는 각각의 가능세계를 전개하려면, 머릿속에서 20년치에 해당하는 기억을 짧은 순간에 새로 조직해야 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팔랑이는 나비의 두 날개가 슬쩍 우뇌와 좌뇌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이를 상징하는 것이리라.
<나비효과>의 구조는 하나의 플롯을 선형적으로 진행시키는 게 아니라, 다수의 플롯을 공간적으로 병행시키는 방식으로 짜여진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디지털 시대에 이미 대중의 일상이 된 하이퍼링크를 형식화한 것이다. 오프라인의 독서는 텍스트를 앞에서 뒤로 읽어나가는 선형적 글 읽기다. 인터넷 서핑은 다르다. 온라인의 읽기는 대개 비선형적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글 읽기는 외려 웹페이지 속의 밑줄 쳐진 낱말을 클릭해가면서 공간적으로 산포한다.
어쩌면 이는 시를 닮았을지 모르겠다. 로만 야콥슨은 ‘잠재성의 축을 현실성의 축으로 투사’하는 것이 시 텍스트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또한 <나비효과>를 구축하는 원리가 아닌가. 영화 속에서 제시되는 여섯개의 세계 중의 다섯개는, 원래 현실태가 아니라 그저 잠재태로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 잠재태를 현실태로 제시하고, 그 때문에 영화 속의 현실은 여섯개의 층을 가진 공간적 구조물, 일종의 대위법적 구조를 갖게 된다.
인과관계의 파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린 에반이 과거로 돌아가 정신병동의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 거기서 에반은 아버지에게 이 현실을 되돌릴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하나님 아들 놀이를 하려느냐”며, 불행은 자기 혼자만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에반이 자신은 현실을 변경하기 위해 계속 시간을 가지고 놀이를 할 것이라 말하자, 흥분한 아버지는 “너 같은 인간은 없애버려야 한다”고 외치며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조른다.
실제로 에반이 현실화한 어느 가능세계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어떤 세계에서는 세 친구 중 누군가가 불행해지고, 또 다른 세계에서는 에반 자신이나 어머니가 불행해진다. 감독판에서 에반은 자신을 임신한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영화를 보며 어머니의 태내로 돌아가 자살을 시도한다. 어머니는 유산을 하고, 그제야 비로소 모든 이들이 행복한 상태가 회복된다. 이로써 감독은 에반을 정말로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킨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문득 어린 시절 에반의 블랙아웃이 성인이 된 그의 시간여행의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원인과 결과는 서로 꼬리를 문 두 뱀처럼 고리를 이루고, 이로써 인과관계의 선형성이 파괴된다. 한마디로 이 영화의 놀라운 부분은, 선형적 플롯의 파괴를 인과적 사유의 파괴로까지 밀고 갔다는 점에 있다. 바로 이것이 아마도 별로 매력없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