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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마술을 믿습니까
‘신중세주의’(neo-medievalism)라는 말이 있다. 이는 헤들리 벌이 <무정부적 사회>(1977)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세계화’로 인해 개별국가들의 주권이 점점 더 침식당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한 국가가 자신의 영토 내에서 절대적 주권을 행사했으나, 오늘날 한 국가의 주권은 나라 밖의 다양한 기구나 조직의 정치적,
글: 진중권 │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
201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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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미학에세이] 익사한 사내
1839년 루이 다게르가 최초의 사진인 <다게로타이프>를 대중에게 공개한다. 그 이듬해에 또 다른 선구자인 이폴리트 바야르는 익사한 사내의 시체를 찍은 사진을 발표한다. 그 사내는 바야르 자신이었다. 바야르는 다게르와 비슷한 시기에, 하지만 다게르와 다른 방식으로 사진을 발명했다. 하지만 학술원 회원인 아라고로부터 발표를 늦춰 달라는 요청을 받고
글: 진중권 │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
201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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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사진은 회화처럼
고즈넉한 들판을 걷던 네명의 사내가 갑자기 불어온 한줄기 돌풍에 고개를 숙이고, 그중 한 사내가 들고 있던 서류철에서 문서들이 바람에 날려 하늘로 흩어져 오른다. 제프 월의 <갑작스런 바람>(1993)은 언뜻 보기에는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하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것처럼 보이나, 실은 배우들을 데려다 연출하여 찍은 사진들을 포토숍으로 합성한
글: 진중권 │
201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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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컴퓨터의 눈
거대한 포맷, 예리한 윤곽, 강렬한 색채로 현실보다 더 강력한 현실을 제시하는 구르스키의 사진은 우리를 당혹시킨다. 너무나 사실적(=사진적)이면서 동시에 너무나 허구적(=회화적)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도 엇갈린다. “이것은 진짜 세계다. 내 모든 사진에서 이 점이 내게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말하기를, “결국 우리는 그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글: 진중권 │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
201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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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세계의 자화상
미학사를 뒤져보면 여러 가지 것들이 회화의 은유로 사용되어왔다. 가령 플라톤은 회화를 ‘거울’에 비유했고, 로마의 저자 플리니우스는 회화를 ‘그림자’와 연관시켰다. 어느 여인이 먼 길을 떠나는 사랑하는 연인을 벽에 세워놓고 그림자의 윤곽을 따라 그린 것이 회화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회화를 ‘창문’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마도 원근법 때문이
글: 진중권 │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
201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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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게이 미학에 관하여
김조광수 덕분에 처음으로 ‘퀴어’영화를 보았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야 그전에도 몇편 보긴 했다. 그 영화들은 가령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처럼 동성애의 정체성과 사회의 보수성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을 다룬 것들이었다. 하지만 <라잇 온 미>는 그 무거움에서 벗어나, 두 남자 사이의 사랑을 담담한
글: 진중권 │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
201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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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체 게바라의 얼굴을 티셔츠 위에서 보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이리라. 장관 자리를 내던지고 게릴라로 돌아간 게바라는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혁명의 화신이자, 젊은 날 가슴 뛰는 정의감의 분신이었다. 이 혁명의 아이콘이 어느새 그가 그토록 증오했던 자본주의 상품경제에 포섭되어 소비의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그의 얼굴을 걸치고 다니는 이들은 그가 볼리비아의 산
글: 진중권 │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
2012-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