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사를 뒤져보면 여러 가지 것들이 회화의 은유로 사용되어왔다. 가령 플라톤은 회화를 ‘거울’에 비유했고, 로마의 저자 플리니우스는 회화를 ‘그림자’와 연관시켰다. 어느 여인이 먼 길을 떠나는 사랑하는 연인을 벽에 세워놓고 그림자의 윤곽을 따라 그린 것이 회화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회화를 ‘창문’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마도 원근법 때문이리라. 르네상스 회화의 과제는 사물의 외관을 넘어 아예 3차원 공간의 환영을 창조하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회화를 창문으로 여긴 것이리라.
창조자, 제작자, 모방자
먼저 가장 오래된 ‘거울’의 비유로 돌아가보자. 플라톤의 어느 대화편(<국가> 10편)에서 소크라테스는 대화 상대인 글라우콘에게 놀라운 창조자에 대해 언급한다. “이 재주꾼은 모든 가구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흙에서 나는 모든 것을 만들며, 모든 동물도, 즉 다른 것들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도 만들어내며, 이것들에 더해 땅과 하늘 그리고 신들, 그리고 또 하늘에 있는 모든 것과 땅 밑 저승에 있는 모든 것도 만들어내기 때문이네.” 하지만 이 재주꾼의 비법은 실은 별게 아니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자네가 거울을 들고서 어디고 돌아다니기만 한다면, 아마도 가장 신속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 걸세. 곧바로 해와 하늘에 있는 것들을 만들어낼 것이며, 곧바로 땅과 자네 자신, 여느 동물들과 도구들, 식물들, 그리고 그 밖에 방금 언급된 모든 것도 만들어낼 걸세.” 한마디로 거울만 있으면 보편적 창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은 당연히 이렇게 대꾸한다. “네, ‘보이는 것들’(phainomena)은 만들 수 있죠. 그렇지만 진실로 ‘있는 것들’(onta)을 만들 수는 없겠죠.”
이는 물론 소크라테스가 기다리던 답변이었다. 이 노철학자는 내처 말한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제작자가 존재한다. 신은 ‘창조자’로서 단 하나의 책상, 즉 책상의 이데아를 만든다. 장인은 ‘제작자’로서 이 이데아를 본떠서 여러 개의 책상을 만든다. 반면 ‘모방자’는 거울을 들고 장인이 만든 책상의 외관을 그저 흉내낼 뿐이다. “그런 제작자들 중에는 화가도 포함된다. 화가는 자신이 제작하는 것을 진짜로 제작한 것이 아니다.” 화가가 제작한 것은 물론 책상이 아니라 책상의 외관일 뿐이다.
알베르티는 그의 <회화론>에서 회화를 ‘그림자’에 비유한다. 플리니우스 전설의 르네상스 버전은 조토에 관한 일화다. 알베르티에 따르면 르네상스 회화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조토는 어린 시절 양치기로 일했다고 한다. 양을 치다가 풀을 뜯는 양들의 그림자를 지팡이로 따라 그린 것이 훗날 그가 화가로 성공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풀 뜯는 양들의 그림자는 태양과 대지가 이루는 각도에 따라 짧게 단축되거나, 혹은 길게 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가 나르시스를 회화의 기원으로 드는 대목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 가련한 청년은 물에 비친 그림자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 자리에서 굶어죽었다고 한다. 알베르티에 따르면 이렇게 물에 비친 그림자를 영원히 소유하려는 욕망에서 회화가 탄생했다고 한다. 나르시스 이야기에서는 원본과 복제의 관계 사이에 묘한 엇갈림이 존재한다. 물그림자는 한갓 복제에 불과하나, 원본인 나르시스는 바로 그 복제를 위해 죽어야 했다. 아주 흥미로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읽어야 할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재현’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플라톤은 창조자-제작자-모방자의 위계 속에서 화가를 가장 아래에 위치시켰다. 화가는 진짜가 아닌 가짜, 말하자면 시뮬라크르를 만드는 자라는 것이다. 반면 알베르티가 소개하는 나르시스의 전설에서는 물그림자는 원본인 나르시스가 글자 그대로 죽도록 가지고 싶어 하는 어떤 것으로 나타난다. 한마디로 회화의 위상을 최상위에 올려놓은 셈이다. 여기서 르네상스 화가들의 드높은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카메라 옵스쿠라
알베르티는 사물의 윤곽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놓는 기계적 절차와 도구를 발명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예술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사물의 외관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가 있다. 알베르티의 방법은 3차원 공간의 사물을 2차원 평면에 ‘기계적 방식’으로 매핑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화학적 절차’를 이용하여 3차원 공간의 사물을 2차원 평면에 정확히 옮기는 방법도 존재한다. 그 기술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발명된다. 결국 회화의 존립 근거마저 흔들게 될 이 기술은 바로 사진술이다.
사진술의 발명자들은 아마도 나르시스와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물그림자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에게 영상을 고정시키는 방법이 있었다면, 나르시스는 아마도 물가에서 굶어죽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사진술도 한때 그 단계를 거쳤다. 카메라 옵스쿠라가 발명된 것이 15세기 말, 데이비드 호크니가 찾아낸 것처럼 수많은 거장들이 그림을 그릴 때 몰래 이 새로운 광학장치를 활용했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그 물그림자 같은 이미지를 붓과 물감으로 고정시키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거다.
카메라의 등장은 ‘회화=거울’이라는 오래된 비유를 최종적으로 파괴했다. 정확한 재현의 과제를 카메라가 넘겨받은 이상, 회화는 더이상 거울일 수가 없었다. 회화는 카메라가 못하는 일을 해야 했다. 카메라가 사물을 ‘똑같이’ 묘사한다면, 회화는 카메라와 달리 사물을 ‘다르게’ 묘사할 수가 있다. 여기서 사물을 괴상하게(?) 묘사하는 현대회화가 탄생한다. 이즈음 철학에서도 ‘정신=거울’이라는 은유가 무너진다. 회화는 재현이 아니라 ‘구성’, 인식은 반영이 아니라 ‘구축’으로 여겨진다.
거울-회화
그 뒤 ‘회화=거울’이라는 비유는 영원히 사라진 듯했다. 그러다가 60년대 초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라는 이탈리아 화가가 회화에 다시 거울을 끌어들인다. 1961년부터 그는 회화와 거울을 결합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에 돌입한다. 유리거울이나, 거울 처리가 된 강철판에 사진을 오려붙이는 등의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1962년 그는 제 작업의 기초가 될 거울-회화의 테크닉을 확립한다. 그것은 거울 처리가 된 강철판 위에 사진에서 윤곽을 전사한 이미지를 그려넣는 것이었다.
이 작업의 관념은 분명하다. 먼저 여기에는 시간의 대립이 있다. 즉 과거에 재현된 이미지는 지금 거울에 현시되는 이미지와 충돌을 일으킨다. 나아가 작품의 안과 밖의 충돌이 존재한다.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울 면 덕분에 작품은 관객과 환경까지 제 안에 담을 수가 있다. 그는 이를 “세계의 자화상”이라 불렀다. 마지막으로 작품 속의 사진 이미지와 거울을 통해 비치는 관객의 이미지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대립(정적/동적, 표면/깊이 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내가 주목하는 대목은 정작 따로 있다. 즉 피스톨레토의 거울-회화가 재현 기술의 역사에서 벌어졌던 어떤 대립의 기억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동적인 거울과 정적인 회화의 대립은 카메라 옵스쿠라의 동영상을 감광물질을 사용해 화면에 고정시키려 했던 19세기 발명가들의 난제를 반복한다. 그뿐인가? 더 멀리 올라가면, 그 과제는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고정시켜 영원히 소유하고 싶어 했던 나르시스의 고뇌를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