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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사랑한 후에
1893년 어느 날 화가 피에르 보나르(1867~1947)는 파리의 전차 안에서 키 작은 여인을 보았다. 무작정 그녀를 일터까지 뒤따라간 보나르는 같이 살아 달라고 청했다. 둘은 그로부터 여자가 죽을 때까지 50년을 함께했다. 처음에 여자는 자기의 이름은 마르테고 열여섯살이라고 했다. 그녀의 진짜 이름이 마리아이며 20대 중반이라는 사실을 보나르가 안 것
글: 김혜리 │
200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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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몽상가를 사랑한 현실주의자
이게 다 소설 탓이다. 라만차의 귀족 알론소 키사노는 기사도 문학에 탐닉한 나머지 자신이 읽은 것이 글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다. 영문 모르는 동네 처녀를 둘시네아라 이름 짓고 열렬히 숭배하더니, 여인숙 주인을 성주라고 우겨 그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는다. 보다 못한 이웃들이 해악의 근원인 책을 없애지만, 불굴의 기사는 새벽을 틈타 다시 넓은 세상으로
글: 장영엽 │
200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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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밤의 하모니
제임스 맥닐 휘슬러, <푸른색과 금색의 야상곡: 낡은 배터시 다리> 1872/1873
James McNeill Whistler, <Nocturne : Blue and Gold-Old Battersea Bridge> 1872/1873
밤은 내린다. 아침이나 낮에는 어울리지 않는 동사 ‘내리다’가, 밤을 주어로 삼으면 활짝 날개를 편
글: 김혜리 │
200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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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이별하지 않는 방법
화가 발튀스(1908~2001)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그랬듯 자신의 그림 속으로 슬쩍 잠입해 들어가는 습관이 있었다. 작품 속을 미행(微行)할 때 발튀스는 관람자를 향해 등을 돌린 포즈를 즐겨 취했다. 둥근 뒤통수와 작대기 같은 몸매를 한 화면 속 화가는 최대한 개성을 삭제한 ‘행인1’에 가까웠다. 드물게도, 발튀스의 얼굴이 정면을 드러낸 채 다른 인
글: 김혜리 │
200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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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불면을 위한 스크린
<들리는, 보이지 않는>은 실내 공간을 칸막이칠 때 사용하는 스크린이다. 시선을 차단할 필요가 있는 침대나 옷장 앞에 놓여 가림막 구실을 하는 가구다. 당신이 이 작품을 보고 어디 쓰는 물건일까 잠시 고민했다면 디자이너 웬델 캐슬(1932~)은 득의에 찬 미소를 지을 것이다. 조각과 출신으로 가구제작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는 디자이너 웬델
글: 김혜리 │
200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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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벚꽃의 미학
초여름 주말, 야외 공연에 갔다가 말미에 불꽃놀이를 선사받았다. 요란한 폭죽잔치가 아니라 색깔의 조화를 고심한 꽃다발 같은, 여성적인 불꽃이었다. 그날 밤 꿈에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콘서트 팔찌를 풀지 않은 채 잠을 청했다. 불꽃이 작렬할 때 사람들은 말하기를 멈춘다. 꼬리를 흔들며 솟구치는 불씨의 “피융” 하는 비명에 귀기울인다. 불꽃놀이란 대개 군
글: 김혜리 │
200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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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아무도 모른다
귀향해서 잠시 행복을 누렸던 전(前) 대통령의 때아닌 죽음이, 가슴속 줄 없는 거문고를 슬피 울리는 동안 완당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가 새삼 시야를 파고들었다. 거기 서린 절대 고독과 혹독한 한기가 발걸음을 돌려세웠다. 옛 기록은 김정희를 일컬어 “사람과 마주 말할 때면 화기애애하여 모두 그 기뻐함을 얻었다. 그러나 무릇 의리나
글: 김혜리 │
2009-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