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rre Bonnard,
1893년 어느 날 화가 피에르 보나르(1867~1947)는 파리의 전차 안에서 키 작은 여인을 보았다. 무작정 그녀를 일터까지 뒤따라간 보나르는 같이 살아 달라고 청했다. 둘은 그로부터 여자가 죽을 때까지 50년을 함께했다. 처음에 여자는 자기의 이름은 마르테고 열여섯살이라고 했다. 그녀의 진짜 이름이 마리아이며 20대 중반이라는 사실을 보나르가 안 것은 나중 일이었다. 마르테는 조그마한 몸을 비밀로 휘감은 종잡을 수 없는 여자였던 것 같다. 친구들의 회상에 따르면 마르테는 묘하게 가혹한 말투를 썼으며 어딘가 새를 연상시켰다. 특이한 옷차림을 즐겼으며 손님을 싫어했다. 빈혈, 후두염, 피해망상 등 병치레가 잦아 욕실에서 매일 몇 시간씩 보냈는데 보나르는 욕조와 화장대 주변을 맴도는 그녀의 누드를 수도 없이 그렸다. 보나르의 그림 속에서 마르테의 육체는 나이들지 않았다. 둘은 동거 32년째에 접어든 1925년에 하객없이 조용히 결혼했다. 친척들도 보나르가 죽고 나서야 그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전해진다. 한때 보나르는 다른 여인들과도 연애했다. 그중 한명인 르네라는 여성은 보나르가 결코 마르테를 떠나지 못할 거란 사실을 깨닫자 자살해버렸다. 모델 마르테는 화가 보나르의 뮤즈이자 간수였다. 마르테 또한 종일 자신을 쫓으며 그려대는 시선에 감금된 것 같다고 토로하곤 했다. 한쌍의 자발적 수인들. 그것은 폐소공포증을 일으키는 관계였다.
<남과 여>는 섹스 직후의 정적을 그린 작품이다. 화폭을 단호하게 이분한 버티컬 스크린을 중심으로 왼쪽 침대에 앉아 있는 여인이 마르테고, 오른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는 보나르다. 많은 사람들은 <남과 여>를 정사 뒤 급속히 냉랭해진 남성과 엷은 후회에 젖은 여성을 묘사한 그림으로 읽는다. 그러나 좀더 귀기울이면 다른 이야기가 들려온다. 따스한 햇볕에 감싸여 보드라운 고양이를 쓰다듬는 마르테는 스스로를 나른하게 해방하고 있다. 고개 숙여 자신에게 집중하며 지켜보는 우리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반면 어둠 속에서 옷가지를 집으려는 남자는 허무하고 불안해 보인다. 우리를 향해 노출된 그의 이목구비는 주변의 음울한 적색에 먹혀들어가고 있으며, 벗은 몸을 그린 붓질은 뭉그러져 화가가 주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보나르는 2년 전부터 비슷한 침실 그림을 그렸으나 <남과 여>에 이르러서야 두 인물 사이에 ‘벽’을 쳤다. 더불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섹스의 환상이 썰물처럼 물러난 뒤, 남녀 사이엔 다시 바리케이드가 내려와 있다.
욕망은 언제나 사랑을 참칭하며 상대를 나의 일부로 만들고자 한다. 은둔에 가까운 둘만의 생활 속에서 화가는 끝없이 통합의 환상과 분리의 고통을 오갔으리라. 연인을 400번이나 그렸던 화가는 죽음이 가까워진 1947년 말했다. “사람은 행복해서만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열망에서 실망으로 영겁 회귀하는 <남과 여>는 슬픈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