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 보이지 않는>은 실내 공간을 칸막이칠 때 사용하는 스크린이다. 시선을 차단할 필요가 있는 침대나 옷장 앞에 놓여 가림막 구실을 하는 가구다. 당신이 이 작품을 보고 어디 쓰는 물건일까 잠시 고민했다면 디자이너 웬델 캐슬(1932~)은 득의에 찬 미소를 지을 것이다. 조각과 출신으로 가구제작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는 디자이너 웬델 캐슬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야 할지, 어떻게 사용해야 옳은지 멈추어 궁리하게 만드는 가구를 창작하길 즐긴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뒷면부터 디자인하는 경우도 있다. 다리보다 위판이 작은 테이블, 나무로 깎은 재킷이 등받이에 붙어 있는 의자 등 위트와 연극성이 명인다운 기술과 결합된 기기묘묘한 가구들이 그렇게 탄생했다.
자신의 가구가 예술품으로 향유되고 수집되길 원하는 캐슬은 유럽의 예술가들로부터도 다양한 영감을 취했다. <들리는, 보이지 않는>이 빚진 상대는 독일 표현주의영화의 걸작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다. 영화 속에서 칼리가리 박사는 최면술로 다른 사람을 움직여 악행을 범한다. <들리는, 보이지 않는>의 디자인은 칼리가리의 꼭두각시인 체자레가 희생자를 안고 지붕을 건너뛰고 거리를 질주하다 탈진하는 영화사의 명장면을 한데 응축한다. 흰색과 암청색의 선택도, 흑백 필름을 채색한 오리지널 영화의 컬러를 반영한 듯하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호러영화의 선조이기도 하다. 위태롭게 기울어진 벽과 계단, 삐죽삐죽한 예각의 스카이라인으로 조성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공간은 마음의 풍경(mindscape)에 가깝다. <들리는, 보이지 않는>이라는 제목을 작명했을 때 웬델 캐슬은, 대상의 실체는 보여주지 않으면서 수상쩍은 그림자와 소리만으로 심장을 조여오는 독일 표현주의영화의 기교를 염두에 두었을 터다.
여러모로 <들리는, 보이지 않는>은 마음을 가라앉혀 휴식과 숙면을 돕는 가림막의 기능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번잡한 상념과 싸우며 잠을 간청해본 사람이라면 잠으로 통하는 입구가 난마처럼 얽힌 험로임을 알 것이다. “나는 자고 있는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니다. 반수면 상태에서 내 마음속에서는 내가 겪은 일들과 책에서 읽거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은 얘기들이 한데 모여서 온갖 빛깔로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물이 되어 서로 뒤섞인다”라고 쓴 작가 구스타프 마이링크 같은 이에게 <들리는, 보이지 않는>은 잠과 꿈의 훌륭한 거울이다. 반수 상태의 의식 속에서 수런거리는 무수한 낮의 그림자들, 가파른 장면 전환, 비밀스러운 논리로 펼쳐지는 꿈의 두서없는 주름이 한장의 스크린에 어우러져 빙벽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다. 하긴 영화 역시 잠 없는 꿈 아니던가. <들리는, 보이지 않는>은 스크린으로 만들어진 스크린이다. 굿 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