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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아버지, 어서 일어나세요
-잘들어라아버지가 입을 여셨다그때 우린 저녁을 먹고 있었고 <밥상 앞에선 입다물자>란 가훈이 무색하게 아버진 입을 여셨다. 물론 밥을 입에 넣을 때도 입은 열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 회사 그만뒀다.-아빠-아버지-여보-아범아밥상에 앉아 있던 우리 모두는 짧게 순간의 감정을 담아 아버지를 불렀다.아버진 짧게 말하고 식사를 계속하셨지만 우린 그럴
글: 장진 │
200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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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조개와 오징어
중국집 우동 속에는 홍합조개와 오징어가 같이 들어 있다. 이런 조합은 해물스파게티나 매운탕 같은 음식에도 늘 있는 것이니 특별할 것은 없다. 이들은 같은 바닷물 속에서 태어났고 지금 이 우동국물 속에서 우연히도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들 부류가 살아온 방식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집을 갖고 한곳에 붙박이로 눌러앉아 살았던 반면, 다른 하나는
글: 안규철 │
200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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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평화, 우리가 지킨다
놈이 입을 열었다.“잘 들어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이것을 안정된 시기가 도래하기 전까지 우리가 지키고 다짐해야 할 행동지침으로 삼는다. 크게 세가지만 말하겠다.”“근데 왜 니가 그런걸 말해?”“반장이 지금 결석해서 유고 상태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반장은 왜 안 왔대?”“식중독이래? ... 며칠 동안 못 온대.”“와 부럽다....”“
글: 장진 │
200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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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손잡이
을지로 3가에 가면 온갖 종류의 손잡이와 경첩들만 모아놓고 파는 철물점들이 있다. 나는 종종 작업에 쓸 철물을 구하러 이 가게들을 찾아간다. 서랍과 상자, 문짝 같은 것을 만들면서 거기 쓰일 부속품들을 그때그때 사다 쓰곤 하는 것이다.타일과 욕조, 조명기구와 페인트 가게들이 몰려 있는 이 거리는 인테리어 업자들과 목수와 미장이들, 짐꾼들과 용달차와 주차 단
글: 안규철 │
2004-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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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꽃과 화분
전시회를 열면 친지들이 꽃을 보내온다. 꽃에 대해서 거의 백치나 다름없는 나도 그 덕에 모처럼 꽃을 가까이 해본다. 오토바이 헬멧을 쓴 꽃집 아저씨가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을 붓글씨로 적은 꽃다발이나 화분을 가져다놓고 인수증에 서명을 받아간다. 화환을 정중히 사절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축하하는 마음을, 또는 감사하거나 애도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글: 안규철 │
200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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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패스트, 푸드
그들은 늘 궁리해왔다. 당신의 식사시간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그들은 늘 기다려왔다. 당신이 밥을 빨리 먹고 일어서기를. 그들은 늘 모색해왔다. 당신이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기를. 그들은 누구인가? 쉿, 비밀이야!내가 본 최초의 패스트 푸드는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를 통해서였다. 기본적인 발상은, 그러니까 노동자의 밥먹는 시간도 아깝기
글: 박민규 │
200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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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
우산 없는 세상
우리 주위의 물건들은 최소한 두 가지 상이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세계에 개입하는 도구로서의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세계를 읽는 텍스트로서의 기능이다. 예를 들어 우산은 비가 내리는 세상을 비에 젖지 않고 건너갈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인 동시에, 우산 디자이너의 생각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존재조건을 읽을 수
글: 안규철 │
2004-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