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늘 궁리해왔다. 당신의 식사시간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그들은 늘 기다려왔다. 당신이 밥을 빨리 먹고 일어서기를. 그들은 늘 모색해왔다. 당신이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기를. 그들은 누구인가? 쉿, 비밀이야!
내가 본 최초의 패스트 푸드는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를 통해서였다. 기본적인 발상은, 그러니까 노동자의 밥먹는 시간도 아깝기만한, 아니, 밥을 먹이는 그 순간에도 일을 시킬 순 없을까? 물론 있지요!의 발상 그것이었다. 일해라. 가만히 있으면 기계가 밥을 먹여줄 테니, 그러므로 일해라. 만국의 노동자여!
내가 먹은 최초의 패스트 푸드는 햄버거였다. 햄버거를 먹으며 나는 캠퍼스를 뛰어다니거나, 종로3가의 극장가를 서성이거나,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했다. 자네 참, 열심이군. 저 참, 열심이죠? 빨리빨리- 햄버거를 먹으며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나는 시집을 사고는 했다. 무렵엔 장정일의 시를 좋아했는데, 예컨대 그의 시집 <햄버거에 관한 명상>도 그때 산 책이었다. 햄버거에 관한 명상이라! 햄버거를 먹으며 나는 시집을 펼쳐들었다. 늘, 점심시간은 짧고 시는 아름다웠다. 오늘 내가 해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장정일 시 <햄버거에 관한 명상> 중)
인류가 먹은 최초의 패스트 푸드는 아마도 밀병과 마늘일 것이라 전해진다. 나는 상상한다. 맛은 없지만 영양이 듬뿍 든 상상. 피라미드를 쌓아올리다 묵묵히, 그러나 빨리 빨리- 마늘을 끼운 밀병을 우물거리는 노예의 모습을, 상상한다.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 불쑥 들어와 버린 것인가! 오랜만에, 그러나 처음 보는 불갈비버거란 걸 씹으며, 나는 상상한다. 이 아삭아삭한 건, 마늘이 아닌가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 그렇다. 이젠 뭘 넣었는지 잘 모를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지나갔다. 피라미드의 사각추 위를 빨리빨리 건너가는- 저, 인류의 해.
식당에서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들은 모두가 노예이다. 사발면의 뚜껑을 덮고 기다리는 이도, 줄을 서서 샌드위치를 사는 이들도, 그러니까 햄버거를 만들어 먹어야 하는 족속들은- 모두가 노예이다. 서둘러 돌아가야 할 일터가, 빨리 먹고 일어서야 할 이유가, 가서 해야 할 일이, 이들에게 있다. 이들은 누구인가? 쉿, 그것도 역시 비밀이야!
그러니까 어제와 달리, 오늘 우리가 해야 할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아무나 못하게, 많은 재료를 들여, 번거롭고 오래오래 삶을 변화시키는 명상, 맛이 좀 달라도 영양이 좀 부족해도, 그러니까 그런 뭔가를 만들어보는 명상. 아니 어쩌자고 당신이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이탈하려드는 거지? 들이켠 콜라의 차가움에 깜짝 놀라- 나는 햄버거를, 불갈비버거를 떨어뜨린다. 그 조각이, 즉 영양 만점의 마늘이 들어간 밀병의 눈동자 같은 바로 그것이- 나에게 소리친다. 당신이 세상의 밥이다. 빨리 키워, 빨리빨리 일을 시키고, 빨리빨리 퇴직을 시켜버린다. 오늘의 메뉴도 마찬가지였지? 패스트 푸드를 생각하는 바로 당신이, 이 세상의 패스트 푸드다. 쉿, 말하지 말라니까. 다 먹었냐? 다 먹었다.
박민규/ 무규칙이종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