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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유쾌하면 그만, 한번 웃고 넘길 수 있으면 만족해˝
<성춘향>(1959)을 시작으로 <대심청전>(1962), <말띠 여대생>(1963)에 이르는 장편의 성공으로 난 단지 능력있는 촬영기사가 아닌 역량을 갖춘 영화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어. 이후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소년과 그를 돌보는 가정부의 따뜻한 사랑을 그린 <아름다운 눈동자>(1966)는 한창 연기의 물이
200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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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뚝배기 현실을 담아 영화판에 뛰어들었지˝
“(경쾌한 브라스 반주가 흘러나오며)… 서울의 지붕 위에 아침해가 솟으면, 오늘도 새로운 시대와 낡은 시대가 어깨를 겨루고 사는 이 골목 안에, 서울의 희한한 꿈과 사랑과 웃음과 눈물이 살아서 숨결 짓는다.”<서울의 지붕밑>(1961) 오프닝 내레이션테크니컬 어드바이저로 신필림에서 활약하던 나에게 드디어 메가폰을 쥘 기회가 온 거야. 1961년
200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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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춘향과 향단의 화장에만 두 시간이 걸리더라구˝
“친애하는 리에게,한국에서 <휴전>을 촬영하는 동안 당신이 파라마운트 영화사에 제공했던 커다란 도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영화에 출연했던 많은 한국인들을 감독하는 당신의 능력과 더불어 당신의 영화에 대한 노하우와 영어 지휘가 없었다면 우리의 프로젝트는 심각한 곤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 영화가 상영된 뒤 당신의 도움으로 찍은 장면들에 대해
200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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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리버티 뉴스> 제작, 그리고 3D 입체영화 조감독으로 일하기까지
50년 미국 공보원 영화부에서 내가 맡은 일은, 미국에서 제작된 홍보영화를 번역하는 거였어. 순전히 영어 실력이 요구되는 일이었기에 나에게 주어진 거지. 다큐멘터리를 처음으로 접하는 순간이었어. 정작 나에게 영화의 길을 열어준 건 미군이 된 셈이야. 그뒤 53년 국제연합한국재건단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영화제작의 길로 들어서게 돼. 운크라(UNKRA
200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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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한국전 참상 알리는 다큐 찍으면서 영화 배웠지˝
이번호부터는 전쟁의 여진이 옅어지며, 산업화와 변화의 전조가 짙어지던 시대의 생생한 풍속도 <서울의 지붕밑>(1961)의 이형표 감독(80)의 회고담을 싣는다. 50년대 초반, 주한미국공보원(USIS)과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에서 외국의 영화 기술을 먼저 경험하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 원로감독은 한국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200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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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백살 전시회에서 만나자구˝
그간 대종상에서 기술분과 시상식은 있었지만, 스틸부문은 없었어. 91년에 드디어 스틸 시상이 있었고, 내가 그 첫 번째 수상자가 됐어. 영광이었지. 드디어 아내 볼 면목이 생겼구나 했지. 이듬해 영상자료원의 협조로 고희 기념 사진전을 열었을 때, 시작 테이프를 끊기 전 아내가 내게 한마디 하더군. “평생을 바치시더니 결국 하나 이뤘구려.” 그 순간 아내에
200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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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아니, 당신 살아 있었어?˝
(저번호에 이어) 이날은 <남자위에 여자>의 첫 장면으로 쓰일, 신부가 기다리는 선상결혼식장으로 신랑을 태운 헬기가 도착하는 장면을 찍을 예정이었어. 촬영준비가 갖춰진 건 오후 4시가 다 돼서였고, 잠실선착장 하류 200m 지점인 한강 위로 헬기가 날아오르면서 촬영이 시작됐어. 당시 헬기에는 모두 8명이 올랐는데, 정원보다 조금 많이 탄 거지
2002-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