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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살아 있는 척하기, 최선 평론가의 <사람과 고기>
노년의 삶을 흔히 생의 마무리라 포장하지만, 영화 속 노인들에겐 버티기일 뿐이다. 마무리를 할 만큼 생의 과정이 정연하지 않았고 아름다운 끝을 설계할 만큼 삶을 꾸미며 살지 않았다. 폐지를 줍고 노상에서 채소를 팔며 생을 이어가는 세명의 노인은 법과 제도의 보호망 밖에 있다.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고기를 먹고 도망치는 이들의 행위는 사회의 경계 밖으로 밀려난
글: 최선 │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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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침묵 깨기의 어려움, 홍수정 평론가의 <양양>
최근 독립영화계의 두드러진 경향 중 하나는 여성의 사라진 서사를 다시 쓰는 일이다. 미처 쓰지 못한, 시간에 파묻혀버린 이야기. 그래서 이런 시도는 대개 선대의 여성을 향한다. <양양>은 이런 조류 위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양양>을 ‘선대 여성 서사 쓰기’ 카테고리 속 하나로 심상하게 분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글: 홍수정 │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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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사라져가는 제지 공장의 장인과 영화 공장의 작가 감독, 김소영 평론가의 <어쩔수가없다>
유만수(이병헌)와 그의 잠재적 경쟁자들은 장인에 근접한 숙련 노동자들이며 관리직이다. 특수 제지 생산 라인을 관리한다. 그들이 제지 생산 마지막 단계에서 막대기로 종이를 두들기는 행위는 종이의 밀도, 결, 수분 함량을 확인하는 기술이다. 손과 귀, 막대기의 반향만으로 그들은 종이의 상태를 진단한다. 종이는 두드림 속에서, 악기가 연주자에 따라 다른 소리
글: 김소영 │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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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레제는 시네마다, 이우빈 기자의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이하 <레제편>) 은 시네마다. 단순히 <레제편>이 서사의 완결성이나 매력적인 캐릭터의 구성으로 획득한 감흥을 두고 영화적이란 수사를 표하는 것은 아니다. 으레 ‘영화’로 불리는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차이야 명백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현실의 풍경을 오려낸
글: 이우빈 │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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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프레임의 죽음을 희망하며, 최선 평론가의 <얼굴>
“그런 게 일종의 오해야, 오해.” 연상호의 <얼굴>은 눈이 보이지 않는 전각 명인 임영규(권해효)의 이 첫마디로 시작한다. 사건의 핵심을 직접 드러내는 대사는 아니지만, 작품 전체의 운명을 짧게 예고한다. 오해라는 말은 잘못 인식했다는 뜻을 넘어 인간이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의미한다. 얼굴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글: 최선 │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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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기록되지 않는 것을 기록하기, 문주화 평론가의 <3학년 2학기>
이란희 감독의 첫 번째 장편 <휴가>에서 재복(이봉하)은 끝이 보이지 않는 농성을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휴가를 내어준다. 그의 휴가는 밀린 집안일, 딸들의 대학 등록 예치금과 패딩 점퍼를 마련하기 위한 노동으로 부지런히 채워진다. <3학년 2학기>는 중소기업 실습생으로 이른 취직을 하면서, 학생으로서의 마지막 학기를 누리지 못하는 창
글: 문주화 │
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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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심리적인 쾌감의 부재 - 이지현 평론가의 <어글리 시스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몸속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바로 약국을 찾았고, 소화제 한알을 삼키고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어글리 시스터>(2025)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영화 <기생충>(2019)의 타이틀이 떠올랐다. 알레고리로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기생충’이라는 세 글자가 머릿속을 떠다녔다. 하얗고 기다
글: 이지현 │
202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