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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만약에 기적이 일어난다면, 이병현 평론가의 <델마>
<델마>는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운 영화는 아니다. 첫 장면부터 아비가 자식에게 총을 겨누지만, 그 원인이 부모의 근본주의적 신앙인지 아이의 ‘나쁜 씨앗’인지를 오래 헷갈리게 하지는 않는다. 그 힘을 신이 주었든 악마가 주었든(아마 둘 다 아닐 확률이 크지만), 델마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마녀’라는 점은 꽤 명확하다. 나를 흥미롭게 하는 사실
글: 이병현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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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잔혹한 세상에서 어머니는, 이지현 평론가의 <경주기행>
후반부의 어느 장면, 산에 오른 어머니의 모습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옥실(이정은)은 막내딸과 남편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든 상현(변요한)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를 붙잡아 등에 지고 산꼭대기로 향한다. 상현의 육신은 옥실의 허리와 묶여 있다. 허리춤에 그를 안고, 그녀는 고통스럽게 땅바닥을 기어간다. 마치 교수형에 처하듯 부자연스러운 두 사람의 구도,
글: 이지현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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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범속한 구원의 자리, 박윤희 평론가의 <트루먼의 사랑>
피터 위어의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이 마주했던 가짜 세계는 완벽하게 통제된 거대한 스튜디오 세트장이었다. 그러나 김덕중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트루먼의 사랑>에서 인물들이 마주하는 거짓 세계는 잘 꾸며진 스튜디오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숨 쉬고 부대끼는 일상 그 자체다. 영화의 출발점은 대단히 기이하면서도 명징하다. 지연은 어느 날
글: 박윤희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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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기어코 도래한 재난, 최재혁 평론가의 <오크 스트리트의 마지막 날>
영화사에서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비인간 존재는 대개 두 갈래의 서사적 계보 위에서 구체화되어왔다. 하나는 문명의 과오나 역사적 트라우마를 대변하는 알레고리적 괴수다. 혼다 이시로의 <고질라>(1954)가 핵실험의 공포를 형상화하고 봉준호의 <괴물>(2006)이 사회시스템의 모순을 체현했듯, 여기에서 괴수는 인간의 죄의식을 반영하는 거
글: 최재혁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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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극도의 현재 몰입과 초근거리 미래, 최선 평론가의 <애정만세>
1990년대의 타이베이는 빠르게 팽창하는 도시였다. 경제성장과 함께 새 건물이 올라가고 집값은 급등했다. 주택은 거주 공간인 동시에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투자자산이 됐다. 실거주 수요와 주택 공급 사이에 간극이 생겨 완공된 뒤에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도시 곳곳에 발생했다. 차이밍량 감독은 그 빈집 하나를 골라 영화의 중심에 놓는다. 주인공 세 사람이 드나
글: 최선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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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자연의 순리에서 찾은 생명의 얼굴, 박윤희 평론가의 <지난 여름>
농번기를 맞이한 홍천군 화촌면의 농부들은 모를 심고, 벼가 잘 자라길 기다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린다. 최승우 감독은 그 기다림의 자세로 카메라를 들었다고 말한다. 농촌의 실제 삶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것이며, 잠시 농사를 지어봤다고 그 시간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이 겸허함은 연출자의 태도를 넘어 <지난 여름>이 시간을 다
글: 박윤희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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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아무도 아닌 자가 간절히 귀향을 원하여, 유선아 평론가의 <오디세이>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 시퀀스에는 생략된 원전의 내용이 있다. 오디세우스는 이름을 묻는 폴리페모스에게 ‘아무도 아니다’(Nobody)라는 뜻의 이름을 거짓으로 지어낸다.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의 눈을 찔렀을 때 거인이 우레와 같은 비명을 지르며 발을 구르자 다른 외눈박이 거인들이 몰려와 이유를 묻는다. 폴리페모스는 ‘아무도 아니다가 나를 죽이려
글: 유선아 │
2026-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