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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이 일이 좋아지지가 않아요”
경진의 첫 업무는 “n포털에 ‘실내 포차’를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블로그 검색결과 1페이지 안에 ‘더진포차’ 맛집 후기가 노출”되게 하는 것이었다. 기계적으로 도배된 광고들은 더이상 소비자들을 매혹할 수 없기에 현대 마케팅 문법은 진화를 거듭한다. 구체적 개성을 지닌 가상인물의 블로그를 꾸며 자연스럽게 광고를 노출하는 것. 시간과 열정, 재능이 요구되는
글: 오혜진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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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묻다
과거 영화에서 범죄자들의 범법 행위는 그들이 처한 현실에 비추어 정당화되곤 했다. 예컨대 영화 <오발탄>에서 삶의 희망을 박탈당한 주인공에게 은행털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관객이 범죄자들에게 감정이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단서들이 필요했다. 그들은 무고한 시민을 해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불가피하게 그런 일을 저지른다면 결국은 죗값을 치러야
글: 심보선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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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음악의 즐거움
예전 같았으면 테이프가 늘어졌을 것이다. 듣고 듣고 또 들어서, 더이상 테이프가 음악을 재생해낼 수 없을 때까지 테이프를 잡아 늘리고 말았을 것이다. 요즘 이렇게 열렬히 사랑에 빠져 있는 음악은 감미로운 목소리의 발라드도 몸을 들썩이게 하는 댄스곡도 힙한 감성의 인디음악도 아닌, 몇 백년 묵은 클래식이다. 하도 오랫동안 한방을 차지하고 있는 바람에 거기
글: 김겨울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1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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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당신의 불행을 기원하며
“OO아, 오랜만이야. 넌 행복하니? 갑자기 행복이라니 참 뜬금없지? 근데 사람들도 뜬금없이 행복이라는 말 잘 쓰잖아. 지금 당장 어느 고객센터라도 전화해보면 ‘행복하세요, 고객님’이라고 인사할걸? 식당의 물티슈에도, 라디오 DJ의 단골 멘트로, 하물며 연예인에게 사인을 부탁해도 흔히들 ‘행복하세요’라고 쓰잖아. 이렇게 세상 모두가 우리의 행복을 바라고
글: 이동은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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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사랑은 유리 같은 것
영화에 생략된 ‘은희’와 ‘지숙’의 두 번째 투숏은 지숙의 방 침대에 누워 ‘sex’를 발음하는 전자사전 기계음을 반복 청취하며 자지러지는 모습이다. 사적 공간인 ‘방’에서 기계음을 빌려 크게 발음해보는 섹스, 섹스, 섹스…. 영화가 대서사시처럼 그려낸 10대 여성의 “광대한 마음의 지도”, “정서적 스펙트럼”의 한축은 분명 온갖 종류의 ‘친밀성’에 대한
글: 오혜진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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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계획가족의 비애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보면서 영화 <기생충> 생각이 났다. 특히 주인공 가족의 아버지 기택(송강호)이 했던 말 “아들아, 넌 계획이 있구나”가 자꾸 떠올랐다.
옛날엔 “가족계획”이란 말이 있었다. 1960년대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펼친 캠페인이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정부 표
글: 심보선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1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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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이상적인 경청의 세계
향유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예술로 얻고 싶다면 그만한 시간을 기울여야 한다. 책으로 진입하는 머리글을 읽을 인내심과 스크린 앞에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두 시간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어색한 분위기와 초조함과 마법 같은 이끌림과 불현듯 다가오는 슬픔 같은 것들이 몸을 통과하도록 두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면 작품 역시
글: 김겨울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19-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