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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아요

도서관 관장님은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도서관 자랑을 하셨다. 이 말은 경상도 사투리로 읽어야 하니 독자 여러분의 상상을 부탁드린다. “여기가 지방이라 어르신들이 많아요. 도서관을 잘 안 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도서관에서 노래교실을 만들었는데, 어르신들이 노래교실만 듣고 집에 가셨었거든요. 제가 여기 관장을 하게 되면서, 어르신들한테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도록 권유를 많이 했어요. 책도 빌려보시게 하고요. 책이 어렵거나 글자가 작으면 동화책이라도 읽으시라고 빌려드렸어요. 인문학 강좌도 많이 열었고요. 그렇게 해서 어르신들이 도서관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실 수 있게 도와드렸거든요. 처음에는 이게 별일 아닌 것 같아도, 저희가 3년 정도 하다보니까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내가 하기로 한 강연에는 정말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꽤 많이 참석하셨다. 그중에는 관장님이 말씀하신 할머니도 계셨다. 원래는 하루 종일 화가 난 표정으로 직원들에게 그렇게 모나게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그러던 분이 하루가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니 얼굴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인상이 부드러워지고 얼굴이 편안해진 덕에 주변에서 그렇게들 인상이 달라졌다며, 어떻게 그렇게 바뀌었냐는 질문을 한다고 했고, 그것은 관장님의 자랑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나이가 얼마든지 간에 변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믿음으로 장소를 제공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차근차근 해나갈 수 있었다는 것.

대개 노인이 되면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어쩌면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경험이 쌓일수록 완고해지기 마련이니까. 오랫동안 사용한 몸은 새로운 도전과 사고방식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지친 상태일 수도 있다. 심지어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계속 빨라지기만 한다. 그런 와중에 어렵게 찾은 안정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향성이다. 하지만 경향이 그렇다는 말이 곧 모두를 그렇게 취급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진폭과 주기는 달라질지라도 삶은 나이에 상관없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사람은 그 경험을 통과하며 조금씩 변한다. 새로운 경험은 몸과 마음의 부품을 갈아끼운다. 강연장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인간이 죽어가는 존재라고만 생각한다면, 그래서 자신도 다른 이들도 포기해버린다면 모두가 부품을 교체할 기회를 잃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인간은 죽기 전까지는 살아 있는 존재인데. 이건 박막례 할머니의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도 생각했던 바였다. 박막례 할머니가 용감하고 당당한 성격이어서 어떤 체험을 하든 과감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성격에는 분명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자신도 다른 이도 내버려두지 않고 기어코 손 내미는 사람들의 용기를 목격할 수 있어 기뻤다. 그 장소가 도서관이라서 더욱 기뻤던 것 같다. 우리가 그저 풍화되기만 하는 존재라면 이 모든 발버둥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바람을 맞아가면서도 하루하루를 쌓아올리는 존재이고, 그러므로 믿어볼 수 있다. 시간이 흘러도 노래할 수 있고, 서로에게 손 내밀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