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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우주의 한 조각
오랫동안 나는 조르주 피에르 쇠라(1859~1891)는, 과학자의 업무에 참견한 화가라고만 여겼다. 색 입자를 엄밀하게 병치하고 그 종합은 관람객의 눈에 맡긴다는 신인상파의 광학적 기획은 분명히 치열하고 참신하다. 점묘파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리기’의 과정을 그토록 노골적으로 까발린 유파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빛이 자아내는 인상과 감흥을 이른바
글: 김혜리 │
200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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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늙은 예술가의 초상
예술가에게 긴 수명은 무엇을 의미할까. 마르크 샤갈(1887~1985)은 97살에 타계했다. 호안 미로보다 2년을 더 산 그는 유럽 모더니즘을 개창한 예술가 가운데 최후까지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제정 러시아의 가난한 유대인 게토 지역 비텝스크에서 태어난 마르크 샤갈의 본명은 모세와 연관돼 있고 샤갈이라는 성에는 갈매기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이름의 예언처
글: 김혜리 │
200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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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출가 또는 가출
왼쪽 그림의 제목 <도망자>는 가출한 꼬마를 가리킨다. 빨간 손수건에 주섬주섬 싼 허술한 보퉁이가 홧김에 꾸린 여장임이 한눈에도 분명하다. 집에서 그리 멀리 가지 못해 배가 고파 쭈뼛쭈뼛 식당에 들어섰으리라. 동네 순경과 주방장은 어린 도망자의 행색에 모든 걸 눈치챈 듯 사연을 묻는다. <도망자>가 ‘가출’의 삽화라면 <집을
글: 김혜리 │
200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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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얼굴 없는 것들
미술품을 바라볼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찾는다. 비단 인물을 모델로 삼은 회화와 조각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화병의 꽃과 접시의 사과, 봄날의 잔디밭, 심지어 추상을 그린 작품이라고 해도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그것의 ‘얼굴’- 눈의 초점을 맞추고 감정을 투사할 점- 을 본능적으로 찾아 방황한다. 자크 오몽이 썼듯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글: 장영엽 │
2009-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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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물병은 물병이다
클로드 모네를 수련 중독자라 부르고, 에드거 드가를 발레리나 오타쿠라고 놀리는 무례가 관대하게 용인된다면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 화가 조르지오 모란디(1890~1964)는 다음과 같이 불릴 법하다. “그릇을 늘어놓는 100만 가지 방법을 고안한 화가.” 좁다란 테이블 위에 세심히 배치된 호리호리한 물병, 납작한 깡통, 입이 넓은 찻잔 등 갖은 생김새의 용기
글: 김혜리 │
200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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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죽음을 기억하라
현대 미술의 곡예에 단련된 오늘날 관람객은, 웬만한 도발에는 뒷목을 잡지 않는다. 니콜라 콘스탄티노의 <젖꼭지 코르셋>도 멀찌감치 보면 약간 아리송한 작품에 불과하다. 미술관에 웬 란제리? 우리가 질겁하게 되는 시점은 검정색 토르소 마네킹에 입혀진 코르셋에 약 1.5m 거리까지 근접했을 무렵이다. 고급 핸드백에 쓰이는 타조 가죽으로 보였던 코르
글: 김혜리 │
200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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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외설적인 고독
잊기 위해 마시고, 기념하기 위해 마신다. 스스로를 치하하려 마시고, 벌하려고 마신다.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마시고,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어서 마신다. 우리는 수천의 핑계를 싸들고 술에 투항한다. 그림 속 남자는 혼자다. 어쩌면 친구들과 어울린 거나한 술자리를 파한 뒤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 한병의 마개를 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독대했던 술병마저
글: 김혜리 │
2009-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