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 Chagall,
예술가에게 긴 수명은 무엇을 의미할까. 마르크 샤갈(1887~1985)은 97살에 타계했다. 호안 미로보다 2년을 더 산 그는 유럽 모더니즘을 개창한 예술가 가운데 최후까지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제정 러시아의 가난한 유대인 게토 지역 비텝스크에서 태어난 마르크 샤갈의 본명은 모세와 연관돼 있고 샤갈이라는 성에는 갈매기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이름의 예언처럼 그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러시아로 돌아간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서방을 전전하며 살았으나, <나와 마을>을 비롯한 숱한 작품을 통해서 새처럼 부단히 귀향했다. 평생 왕성하게 창작한 샤갈이지만, 그의 가장 눈부신 작품은 대부분 35살 이전에 생산됐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특히 샤갈 말년의 그림은 메아리와 여진으로 가냘프게 진동하는 기나긴 에필로그처럼 보인다. 그의 전성기를 정의했던 열정과 관능, 입체파의 세례를 드러낸 구성적 예각이 사라져버린 자리에, 희부연 거울에 비춘 과거가 일렁인다. 선은 극도로 가늘어지거나 보푸라기가 일고, 샤갈 특유의 도상들- 염소인지 당나귀인지 모를 동물, 바이올리니스트, 천사 등등- 은 녹아버릴 듯 흐물거린다. “신이든 누구든 나의 한숨을, 기도와 슬픔의 한숨을, 구원과 부활의 기도에서 나오는 한숨을 화폭에 불어넣을 힘을 준다면”이라고 일찍이 간구했던 샤갈의 기도는 한층 간절해졌을 것이다. 신이 그에게 허락한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의 부피는 화가한테 벅찬 등짐이었을까, 날개였을까. 분명한 점은 그는 인생이 역사라는 바다와 합류하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두개의 얼굴을 가진 화가>를 샤갈은 아흔한살에 그렸다. 초상화는 화가 아니면 모델 둘 중 한 사람이 지배하게 마련인데 그런 의미에서 화가의 자화상은 흥미로운 협상의 결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림 전체를 호령하는 색은 모든 형체의 윤곽을 긋고 여백마다 범람하는 코발트블루다. 컴컴한 화실 안에 떠오른 노란 해는 달을 품고 빛난다. 화가는 모델의 얼굴을 통해 그의 정신을 드러내는 대신 그의 머릿속이 공간으로 흘러넘쳐 인물을 포위하도록 만들었다. 앞발로 촛불을 감싼 나귀, 책을 읽는 여인, 날아가는 남자, 숱한 동경과 추억들이 그를 둘러싸고 원무를 추지만 화가는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아마 화가는 이제 그들을 보기 위해 굳이 눈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화가의 두 얼굴 중 (좀더 큰) 옆얼굴은 붉은 꽃이 그려진 캔버스에 동요없이 몰두하고 있으며, 네개뿐인 손가락은 화폭을 애틋하게 더듬고 있다. 그의 나머지 한 얼굴이 바라보는 대상은 화면 밖의 관람자다. 신화 속 야누스는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보기에 두개의 머리가 필요했다. 아흔한살의 샤갈은 자기보다 오래 살아남게 될 이젤의 그림과 후대의 관람객을 동시에 바라보며 헤아릴 수 없는 자문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