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영화 후면비사]
[한국영화 후면비사] 배우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아니 무슨 똥배짱들이야!” 1961년 1월5일. 결국 파업을 강행한 성우들의 고집 앞에서 조흔파 서울중앙방송국장은 미쳐 나자빠질 심정이었다. 방송국쪽에서 ‘사례금 100푸로 인상’을 타협안으로 제시했지만, 성우들은 곱절을 더 달라는 애당초 요구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출연 거부라는 최후 통첩을 보내왔다. 그동안 성우들의 출연료가 제자리걸음을 한
글: 이영진 │
2008-05-29
-
[한국영화 후면비사]
[한국영화 후면비사] 충무로 스펙터클에 목숨 걸다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적벽대전. 1962년 추석, 극장가의 형국이 그러했다. 을지극장엔 <화랑도>가 진을 쳤고, 국제극장엔 <인목대비>가 납시었다. <진시황제와 만리장성>은 국도극장에 성벽을 쌓았고, <칠공주>는 피카디리극장을 차지했다. 그리고 명보극장엔 <대심청전>이 판을 벌였다. “제작비가 1천만원
글: 이영진 │
2008-05-01
-
[한국영화 후면비사]
[한국영화 후면비사] 베껴야 산다?
“다음 A, B항 중에서 서로 관계가 있는 것끼리 번호를 묶으시오.”
A-①불한당 ②남자조종법 ③5인의 해병 ④이 세상 어딘가에 ⑤마음대로 사랑하고 ⑥급행열차를 타라 ⑦3등과장 ⑧조춘 ⑨주유천하 ⑩5색 무지개
B-①이 하늘가에 ②숨은 성새(城塞)의 3악인 ③용심봉 ④천국과 지옥 ⑤이름도 없이 아름답고 가난하고 ⑥5인의 저격병 ⑦조춘 ⑧가정의 사정 ⑨남자사육
글: 이영진 │
2008-04-17
-
[한국영화 후면비사]
[한국영화 후면비사] 웃으면 흥행이 와요
“무슨 액운이 이리 잦아”, “그러게 말일쎄. 이번엔 합죽이 김희갑이 다쳤다면서?”, “운전석 옆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얼굴이 앞 유리를 뚫었다고 하더라고”, “합죽이는 11월이 끔찍할 거야. 6년 전에도 임화수한테 얻어맞아서 갈빗대 나갔잖아”, “것뿐이야. 안양세트 무너져서 한달 넘게 병원신세를 진 것도 11월이지. 해외 로케 갔다가 비행기 불시착으로
글: 이영진 │
2008-03-20
-
[한국영화 후면비사]
[한국영화 후면비사] 박동명 X파일 파문
1975년의 여름은 암울했고, 흉흉했으며, 또 끔찍했다. “3개월된 갓난아이부터 70살 노인에 이르기까지” 잇따라 17명을 살해한 김대두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남산 위에서 내려다봐도 내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는 스물여섯 청년은 세상을 향해 ‘재크나이프’를 마구 휘둘렀다. “한탕해서 멋지게 살고 싶었다”는 살인마 김대두는 전국을 돌며 피를 뿌렸
글: 이영진 │
2008-02-21
-
[한국영화 후면비사]
[한국영화 후면비사] 돈을 갖고 튀어라
2001년 8월9일 오전. 대구의 한 영화사 사무실은 메아리없는 아우성으로 가득했다. 신섬유소재 개발을 둘러싼 첩보액션영화 <나티 프로젝트>에 투자했으나 제작자인 이모씨가 촬영을 앞두고 잠적했다는 말을 듣고 항의하러 나온 100여명의 투자자들 때문이었다. 부산을 살린 <친구>처럼 <나티 프로젝트> 또한 대구를 회생시킬 것이라
글: 이영진 │
2008-01-17
-
[한국영화 후면비사]
[한국영화 후면비사] 천년 후엔 사랑도 죽음도 스크린으로
“달 보러 남산 가세.” 1969년 7월21일. ‘가슴을 죄는 TV 시청’을 위해 남산 야외음악당에는 무려 10만명의 서울시민이 운집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두눈으로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낙도와 산골 사람들도 “TV를 보겠다”고 도시로 향했고, 심지어 “텔레비전 구경을 위해 관광객을 싣고 가던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다”. ‘인간이 달
글: 이영진 │
2008-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