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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영화사 신문 제21호(1952~1953)
영화사신문 제21호The Cine History격주간·발행 씨네21·편집인 김재희1922 ~ 1924시네마스코프 시대 도래2.55 대 1 와이드 스크린 <성의> 개봉, 스펙터클 앞세워 TV공세 대응1952년 들어 가정에 텔레비전 보유대수가 크게 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 영화계가 ‘하드웨어’ 부문에 혁명에 가까운 기술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글: 심은하 │
200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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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한국영화 회고록 신상옥 12
<성춘향>은 한국영화에 무엇을 제기했나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열다활동 초기부터 제작, 기획, 감독을 겸해온 신상옥 감독은 몇개의 “관념적인” 모델을 거쳐 영화기업 신필림에 이르렀다. <성춘향>(1961)은 이같은 전환의 “모두 다”를 말해주는 작품이다. 당시 <성춘향>의 흥행은 서울 상영만 38만명, 한국영화 평균 4만명을 압
글: 이기림 │
200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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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한국영화 회고록 신상옥 13
<성춘향>으로 1960년대 영화제작의 기업화를 유도하다”기업으로서의 가능성이 있는지를 시험했다"1961년, 고전 서사 <춘향전>을 컬러 시네마스코프로 제작한 두편의 영화가 동시 개봉되어 경쟁한 사실은 영화사의 잘 알려진 사건 가운데 하나다. 익숙함에 대한, 그리고 변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켰던 신상옥 감독의 <춘향전>
글: 이기림 │
200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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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한국영화 회고록 신상옥 14
신필림 탄생, 기업적 영화제작 불붙다“배우·작가 전부 전속이었지”1961년과 63년 두 차례 고시와 법령을 통해 이루어진 영화사 통폐합 과정에서 등록 요건에 미치지 못한 군소 프로덕션들은 사라졌고, ‘신상옥프로덕션’은 ‘주식회사 신필림’으로 전환했다. 이처럼 1960년대 기업적인 영화사의 등장은 군사정부의 영화정책과 연관이 깊다. 그러나 <성춘향&g
글: 이기림 │
200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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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한국영화 회고록 신상옥 15
신필림 탄생이후 영화계 구도변화를 살펴보다“ 양대 산맥으로 갈렸지 ”“이것은 영화산업의 한 과정이지, 완전한 과정이라고는 할 수 없지.” 신상옥 감독은 영화기업 신필림의 15년 역사 동안 제작, 배급, 상영의 통합을 이뤄내지 못한 아쉬움을 이처럼 자신만만하게(?) 표했다. 신필림의 성패를 반추해 당시의 영화산업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신
글: 이기림 │
200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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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한국영화 회고록 신상옥 16
“극장을 했어야 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60년대 배급구조로 보는 신필림의 경영전략 그리고 한계최근 많은 영화 기업이 수익의 안정을 위해 수직통합의 전략을 취하는 것처럼, 60년대 영화시장의 호황 속에서 대형제작사로 조직된 신필림도 배급과 상영에 대한 통제를 꾀했다. 명보극장과의 제휴나 허리우드극장 직영은 그런 시도들이다. 당시의 배급구조와 사세의 변화를 말
글: 이기림 │
200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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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한국영화 회고록 신상옥 11
“피아노선을 그때 처음 썼지”괴기영화 <백사부인>에서 특수촬영의 진화를 엿보다<백사부인> 1960년, 제작 이형표, 제작사 신필림, 각본 임희재, 감독 신상옥, 기획자 황남, 촬영 최경옥, 정해준, 조명 이계창, 음악 정윤주, 미술감독 강성범, 출연 최은희, 신성일, 한은진, 최삼, 고성진, 옥경희<백사부인>은 신상옥 감독이
글: 이기림 │
2003-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