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했어야 했는데 못해서 힘들었지”
60년대 배급구조로 보는 신필림의 경영전략 그리고 한계
최근 많은 영화 기업이 수익의 안정을 위해 수직통합의 전략을 취하는 것처럼, 60년대 영화시장의 호황 속에서 대형제작사로 조직된 신필림도 배급과 상영에 대한 통제를 꾀했다. 명보극장과의 제휴나 허리우드극장 직영은 그런 시도들이다. 당시의 배급구조와 사세의 변화를 말하며 신상옥 감독이 되짚는 신필림의 경영전략 그리고 한계는 무엇일지 주목하게 된다.
요 앞서도 얘기했듯이 블록부킹이라는 것은 전속관에 자기 영화만 붙이지 딴 건 안 붙인다는 건데, 명보극장이 신필림 전속관으로 있었다. 그때는 좋은 프로만 있으면 전속관 같은 게 필요없을 땐데, 결국 좋은 프로 가지고 있으면 극장서는 우리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전속관이라는 게 생기지. 지방흥행사들이 전속관을 맨들고 우리더러 한달에 영화 두개씩 맨들어달라고 했다.
문제는 내가 투자하는 거하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돈하고 잘 안 맞아떨어졌다. 지방에 판 건 이천만원인데 제작비는 이천오백만원 드는 식이지. 장사를 잘 못했다는 얘기야. 그만큼 시장이 좁고 제작비는 많이 들어갔다고 봐야갔지. 제작비 많이 든 건 주로 내 작품에 해당하는 얘긴데, 사극이고 뭐고… 그때는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했다.
우리가 부동산(극장)에 투자를 했으면 좀 낫을 텐데. 장차로는 일본식으로 자기 계통관이 스고, 극장도 직접 하는 건데, 그런 형태가 장차로는 되는 건데, 그때는 돈이 없으니까 거기까지는 손을 안 댔다. 상영업까지 하려면 굉장한 조직이 필요해. 그때는 또 표를 ‘마와시’(回し)한다고 그래가지고, 세금 안 물려고 100매 팔렸으면 50매 팔린 걸로 속이니까 체크할 수가 없다고. 사람 보내서 가 서 있으면 그 사람 또 매수하고 그러니까 도저히 관리가 되질 않아. 나중에 하리우트극장이라고 하긴 했지. 하리우트극장이라는 게 내가 젤 처음 맨든 극장이다. 그러나 극장에는 거의 손을 안 댔다고 봐야지. 그때 부동산(극장)에 좀 투자했어야 되는 건데 못해가지고 결국 재정적으로 힘들었다. 일본서도 영화만 맨들고 부동산에 투자 안 한 회사는 다 먼저 망했다. 예를 들어 다이에이라고, <라쇼몬> 만든 데.
지방에 팔 때는 대구 하나, 부산 하나, 호남선(전라남북도)을 하나로 쳤고, 경기도, 충청도. 이렇게 5개지 아마? 제주도는 경남에서 했을 거야. 아니 호남선에 속했나? 제주도야 그때는 미미했으니까. <심청전> 같은 것은 호남선에서 잘 됐고, 영동 영남은 사람 별로 들지 않았다. 드물긴 해도 서울서 된 게 지방선 안 되고, 지방 되는 게 서울서 안 되는 게 있다. 대략 신파류가 그렇지. <심청전>은 내가 모두 세개 했는데, 한국서 하나(이형표 감독의 <대심청전>)는 남 시켜서 맨들고, 하나(<효녀심청>)는 내가 하고, 이북에 가서도 하고. <심청전>이 신파는 아니였어도 이상하게 호남 정서에 맞나봐? 대체로 서울서 잘되는 건 지방에서도 잘되는데, <벙어리 삼룡이>처럼 대중성도 있고, 예술성도 있는 게 그렇다. 그러나 예술성만 있고 대중성이 없는 건 서울은 몰라도 지방에서는 되질 않아. 그런 의미에서 그걸 양쪽 다 겸한 사람이 이만희하고 김기영이 정도일까? 그게 영화의 원칙이다. 그 두 바퀴가 없으면 돌아가질 않아.
나중에는 우리가 회사를 여러 개로 쪼갰다. 그건 왜 그런고 하니 영화법에 영화사가 제작하는 쿼타를 주니까. 영화사 하나여도 상관은 없는데, 쿼타를 많이 딸려면, 다시 말해서 다작을 할려면 영화사가 많아야 될 거 아냐? 그래서 우리 스타디오가 크기 때문에 그걸 여러 개로 나눠가지고 등록을 했다. 신아필름이다, 안양필름이다, 스타필름이다 하는 것은 다 그런 데서 나온 이름들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한 회사는 몇개만 하라’ 제작 쿼타 배급을 준다 이거야. 그런데 그거 가지고 못하잖아, 그래서는 운영이 안 되잖아. 그래서 이름을 여러 개로 했지. 신필림이 정상에 섰다 하는 것은 글쎄, <대원군> 찍을 때(1968년, 안양필름 제작)로 봐야갔지. 동시녹음 할 때. 그전에도 <주검의 상자>라든가 있기야 있었지만 우리 손으로 제작했다는 의미에서 실질적으로는 <대원군>이 한국 최초의 동시녹음이다.대담 신상옥·이기림정리 이기림/ 영화사 연구자 marie32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