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필림 탄생이후 영화계 구도변화를 살펴보다
“ 양대 산맥으로 갈렸지 ”
“이것은 영화산업의 한 과정이지, 완전한 과정이라고는 할 수 없지.” 신상옥 감독은 영화기업 신필림의 15년 역사 동안 제작, 배급, 상영의 통합을 이뤄내지 못한 아쉬움을 이처럼 자신만만하게(?) 표했다. 신필림의 성패를 반추해 당시의 영화산업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신 감독 자신의 경험과 직관을 쉬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호에서는 신필림이 메이저 제작사로 등극한 이후 달라진 영화계의 구도, 그리고 신필림의 제작활동들이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들어보았다.
우리가 기업이 되고부터는 신필림하고 충무로가 헤어졌다. 양대 산맥이라고 볼 수가 있지. 정창화씨네, 최완규씨네 이런 사람들이 하는 만주 벌판 액션물, 이런 건 우리가 하지 않았거든? 순전히 거국적인 거, 이른바 예술작품이랍시고 하는 것만 했으니까. 그쪽에서는 완전히 상아탑에서 노는 걸로 보였을 거야. 그런데 독립푸로가 건전한 독립푸로가 아니고, 순전히 전주(錢主)를 물어가지고 하는 거기 때문에, 강요하는 대로 따라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라는 게 그렇잖아? 특히 ‘캐피탈리즘’에서는 인기배우 써야 된다, 옛날에 ‘메로드라마’ 됐으니까 요번에도 메로드라마 찍어야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가 맨든 영화지, 프로듀서가 맨든 영화라고 볼 수가 없지.
신필림은 이렇게 돼 있다. 제작부 사원들이, 감독이 프로듀서를 겸해요. 예산을 해가지고 얼마에 띄라, 이거 얼마 든다, 그럼 청부를 맽기는 거야. 대체로 감독 중심의 하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잘못 돼가지고 결국 돈벌이도 잘 안 됐고, 작품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왜 그런고 하니 자꾸 ‘인 마이 포케트’하니까. 프로듀서들이 자각해서 돈들일 데는 들여야 될 텐데, 어떤 감독들은 자꾸 떼어 먹고 제작비에 돈 집어넣지 않으니까. 양산이 잘못된 거지. 양산할 만한 역량이 없었다는 거야, 영화계 자체가. 너무 서둘렀다는 얘기지. 영화란 하나하나 쓰다듬어서 만지면서 키워야 되는 건데, 그렇게 고아처럼 떼밀어가지고 되는 건 아니었어, 사실은.
작품 정할 때는 기획실이라는 게 있어. 기획실이 진행하며는 참고 삼아 받아들였지. 그러나 지금처럼 과학적인 리서치하는 그런 건 없고, ‘어떻게 됐으니까 이렇게 하자’는 식이다. 지금 저 황기성사단 황기성이가 기획실장이었고, 돌아가셨지만 강근식이라고, 몇 사람이 기획실에 있었다. 일년에 한두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맨들었는데, 자기 회사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건 나밖에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다 줘서 한 거고.
자금은 지방흥행사들이 와서 입도선매해다가 가져갔기 때문에 그 돈으로 했는데, 내 작품은 어려움이 별로 없었다. 왜 그런고 하니 대체로 흥행되는 걸 많이 했으니까.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는 없어도- 돈 많이 한다고 손님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 흥행적으로 실수를 안 했으니까 믿고 샀지. <벙어리 삼룡이> 같은 경우는 나운규가 했어도 흥행이 안 됐고, <신부와 벙어리>라고 중국에서도 갖다 했지만 거기서도 실패했고, 우리 것만 유독이 됐어. 그런 시세가 있었기 때문에 딴 거에 밑져도 내 거에서 남는다, 이렇게 생각하고 가져간 게 많았다. 그때는 뭐, 우리 예고편만 돌면 딴 작품들이 모두 피해나갔으니까.
선전은 예고 선전을 우리가 하고, 본 선전은 극장에서 했다. 흥행사도 선전을 좀 했고. 아마 극장 들어가기 2주 전부터 극장에서 한 것 같애. 그러니까 사전에 극장이름 박지 않고 선전하는 경우가 있고, 극장이름 박은 데서부터는 극장에서 돈을 냈다. 그때는 주로 신문에 내는 선전이지 테레비 별로 안 한 거 같애. 보급도 안 돼있고 흑백이라서 테레비 무의미했으니까. 그런데 그때는 신필림이라는 회사를 매스컴에서 상당히 미워하는 현상이 있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내가 기자들 상대를 잘 안 했거든. 그때야말로 영화도 없는데 영화잡지가 나오고, 각 신문에 영화기자들이 있었으니까. 한국에 영화도 없는데 무슨 놈의 기자냐 싶어가지고 내가 만나지를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내 영화 별로 칭찬한 게 없을 거야. 지금 생각하면 다 필요악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의미에서 만나질 않았지.대담 신상옥·이기림정리 이기림/ 영화사 연구자 marie32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