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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남자와 여자와 개의 시간, <해변의 여인>
1. 기적을 암시하는 개의 시간
하얀 진돗개가 잘 차려입은 부부와 함께 봄의 해변을 거닐고 있다. 남자가 얼굴 나이에 비해 머리숱이 적고 둘 다 우울한 말투를 지녔으며 해변의 여행객들이 돌이를 예뻐하는 걸 귀찮아하는 기색이긴 하지만 부부는 기품이 있어 보인다. 해변에는 고즈넉한 평화가 깃들어 있고, 오후의 햇살은 화사하며, 개의 털은 햇살로 더욱 새하얗다
글: 허문영 │
200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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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영화적 재미의 새로운 경지, <해변의 여인>
‘fun’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한 한 학생의 평이다. 집약적 평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해변의 여인>을 볼 때 이제까지 한국영화를 보는 어떤 태도와도 닮지 않은 모드로 즐기는 내 자신과 영화 이웃들을 발견하게 된다. 비디오 관람이 아닌 극장에서 볼 때 말이다. <극장전>을 시사하러 갔을 때도 그랬다. 극장 안 여기저기서 영화
글: 김소영 │
200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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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눈물과 매직 아워, <마이애미 바이스>
도대체 왜 이사벨라는 섹스를 하다 말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울음없는 눈물. 카메라는 이사벨라의 얼굴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고 우리는 그녀의 눈가에 젖은 글썽이는 눈망울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정체불명의 중국인 쿠바 여인과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마약 밀거래상을 하고 있는 마이애미 형사 소니, 혹은 더 정확하게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리와
글: 정성일 │
200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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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세희의 의식이 빚어낸 판타지, <시간>
1. 잔혹한 얼굴
작가 밀란 쿤테라는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한 책 <화가의 잔인한 손>의 서문을 썼다.
소멸해가는 주체의 형상이라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앞에서 밀란 쿤테라는 우리가 연인을 연인으로 알아보게 만드는 기호적 최소 단위에 의문을 던진다. 그 의문을 <시간>이라는 영화에 맞춘 질문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글: 김소영 │
200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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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은 누구인가? <괴물>
지난호 이 지면에 실린 정성일의 <괴물>평은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여기서 멈춘다. (하지만…)’으로 끝맺고 있다. 다른 이의, 아마도 다른 의견을 초대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사적으로도 전영객잔의 다른 두 필자가 <괴물>에 대해 쓰기를 몇 차례나 권했다. 내키지 않는 일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썼고 게다가 정성일이 150매 분량
글: 허문영 │
200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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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노골적이고 단호한 정치적 커밍아웃, <괴물> [2]
사회적 인과응보의 집행자로서의 괴물
물론 박희봉의 연대기를 내가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매점 안에 걸려 있는 멧돼지의 박제머리와 ‘엽우회’(獵友會)라는 모임에 박희봉이 총을 들고 서 있는 기념사진은 그의 삶의 이력 가운데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박희봉이 그들 가족 중에서 괴물과 마주쳤을 때 유일하게 총을 잘 쏜다는 사실 이외
글: 정성일 │
200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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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노골적이고 단호한 정치적 커밍아웃, <괴물> [1]
봉준호의 세 번째 영화 <괴물>을 보았다. 그리고 미루고 미룬 다음 이 글을 쓴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만날 하는 말이라 좀 지겹긴 하지만 여기서는 좀더 근본적으로) 이 글이 스포일러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나는 이미 경고했다! 그 다음은 내 책임이 아니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스포일러없이 이 영화를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글: 정성일 │
2006-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