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토피아로부터] 불투명한 아카이브 올봄에 동료들과 함께 펴낸 책 <원본 없는 판타지>의 본래 제목은 ‘불투명한 아카이브’였다.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한국 근현대 문화사를 새롭게 조명한 이 책은 공식 역사에서 비가시화·주변화된 장면들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미완의’ 혹은 ‘존재하지 않는’ 아카이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애초의 제목을 단념한 것은 ‘불투명한 아카이브’ 글: 오혜진 │ 2020-06-10
- [디스토피아로부터] 혼란의 추억 철학과를 다녔고 책을 소재로 영상을 만들며 문학을 사랑하는 나는 한때 이과에 몸을 담고 있었다. 과학을 좋아하고 법의학 공부를 하고 싶어 했으므로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문과와 이과 구분이 그때만 해도 향후 진로를 결정하는 거대한 선택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이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미련 없이 이과를 선택했다. 글: 김겨울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20-06-03
- [디스토피아로부터] 언어의 효율에 대하여 법률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순화’하자는 주장이 계속 있다. 법률문장을 쉽게 고쳐 쓰자는 말도 있다. 판결문을 높임말로 쓰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나는 이런 흐름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애당초 법률용어나 법률문장은 한글이라는 기호를 사용하고 한국어 문법을 일부 차용한 일종의 외국어나 코드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법 글: 정소연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20-05-27
- [디스토피아로부터] 완벽하게 사라지는 일 그날은 Y가 출근 버스 안에서 졸아 종점까지 가버린 어느 날이었다. 그날 아침 마법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Y를 뺀 세상 전부가. Y가 출근한 직장에서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집으로 돌아가자 그곳엔 다른 이가 아무 일 없듯이 살고 있었다. Y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는 존재하지 않는 번호였다. 문자 그대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와 글: 이동은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20-05-20
- [디스토피아로부터] ‘원본과 사본’에 대한 주석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로 가득한 책 <다크룸>은 미국 페미니스트 수전 팔루디가 격조했던 아버지로부터 한통의 이메일을 받으며 시작된다. 폭력적인 가부장 ‘이슈트반 팔루디’가 성전환수술을 받은 후 ‘스테파니 팔루디’로서 보낸 것이었다. 그녀는 긴 설명 없이 오직 ‘사진’으로만 말하고자 했는데, 그건 평생 광고사진 촬영과 영화 제작을 해온 아버지에게 익 글: 오혜진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20-05-13
- [디스토피아로부터] 정답은 함정이다 그럴 리가 없다. 세상일이 그렇게 명쾌할 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견디질 못해서 스스로 명쾌하다고 주장하는 의견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복잡한 세상에서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 마당에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해가며 더 복잡한 이야기를 듣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듣고 그걸 정답이라고 믿는다 글: 김겨울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20-05-06
- [디스토피아로부터] 윤리에 대하여 작가로 일하다 변호사가 된 다음 자주 받는 질문들이 있다. “변호사로 전직한 이유가 뭔가요?”, “강력범을 변호할 수 있나요?”, “돈을 많이 버나요?” 같은 무난한 질문도 있지만, 다소 곤란한 질문도 있다. 그중 가장 난처한 질문을 딱 하나 꼽자면 단연 “사건 맡은 경험으로 소설을 쓰기도 하나요?”다. 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몹시 당황했다. 글: 정소연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2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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