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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2003 충무로 파워 50 - [3] 21위~30위
21.
박무승 | KM컬쳐 대표
<반칙왕> <달마야 놀자> 등에 투자, 매년 수익에서 ‘플러스’를 기록했지만, 올해 들어 기대를 모았던 <이중간첩>이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해 15억원을 잃고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까먹은 게’ 아니라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여긴다. “관객이 덜 들어서라기보다 해외 로케
글: 이영진 │
200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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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2003 충무로 파워 50 - [4] 31위~40위
31.
김혜준 |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영진위의 안살림을 책임지게 되면서 순위가 껑충 뛰어올랐다. “박사 학위를 줘야 한다”는 한 추천인의 재미난 언급처럼, 그동안 한국영화 진흥책 마련에 있어 ‘싱크 탱크’ 역할을 담당했다. 2000년부터 영진위 정책연구실장으로 일하다 올해 초 사무국장에 임명된 그는 “영진위와 영화계의 거리감을 좁히겠다”는 목표
글: 이성욱 │
200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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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2003 충무로 파워 50 - [5] 41위~50위
41.
봉준호 | 감독/NEW
“파워 500이 아닌가요? 아니면 집계 착오던가.” 파워 50에 들었다는 말을 전해들은 봉준호 감독의 첫 반응은 의외란 것이었다. 이제 2번째 영화를 만들었고, 그나마 아직 흥행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시점인데도 그에게 표가 쏠린 것은 분명 <살인의 추억>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웰메이드 영화이면서도 흥행성을 갖
글: 이영진 │
200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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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무술감독 원화평(袁和平)을 만나다 [1]
“<매트릭스>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원화평은 홍콩액션이 지금 같은 파워를 가지게 된 까닭을 묻자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에는 <매트릭스>를 향한 찬사와 함께 자신이 안무한 액션을 뿌듯해하는 장인의 자존심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오우삼과 서극, 임영동, 우인태가 할리우드에 나섰지
글: 김현정 │
200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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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무술감독 원화평(袁和平)을 만나다 [2]
다른 사람의 영역엔 겸손하게, 자신의 영역엔 고집있게원화평은 1980년대에 무술감독보다 감독으로 더 많은 영화를 찍었다. 그런 그에게 “동작을 짜는 것 외에 촬영이나 편집을 연구하는지” 물었을 때, 그는 “아니, 오직 동작만 생각한다”고 짧게 대답했다. 원화평이 서극과 함께 <황비홍>을 만들어 홍콩영화를 한 고비 끌어올릴 수 있었던 까닭은, 조화
글: 김현정 │
200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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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무술감독 원화평(袁和平)을 만나다 [3]
홍콩 현지에서 만난 원화평 인터뷰 “<매트릭스>는 할리우드 액션의 새로운 고전이 되었다”<매트릭스> 모자를 쓰고 들어선 원화평은 자그마한 사람이었다. 몸집 작은 동양인들 사이에 있어도 쉽게 묻힐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매트릭스> <와호장룡>으로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태풍을 일으킨 무술감독이었다. 워쇼스키 형제가 모
글: 김현정 │
200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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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1]
무술감독 원화평(袁和平)을 만나다 [4]
홍콩 무술영화는 어떻게 할리우드영화를 바꾸었나 ‘볼거리용’ 무술의 관행을 깨고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의 성공이 있기까지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모든 것은 <매트릭스>(1999)에서 시작되었다. 워쇼스키 형제가 사이버 펑크의 세계에 홍콩 무술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오버랩했을 때, 할리우드 액션
글: 김봉석 │
2003-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