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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감독 원화평(袁和平)을 만나다 [4]

홍콩 무술영화는 어떻게 할리우드영화를 바꾸었나 ‘볼거리용’ 무술의 관행을 깨고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의 성공이 있기까지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모든 것은 <매트릭스>(1999)에서 시작되었다. 워쇼스키 형제가 사이버 펑크의 세계에 홍콩 무술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오버랩했을 때, 할리우드 액션영화는 다른 세계로 도약했다. 그리고 <와호장룡>이 북미대륙에서 외국어영화로는 처음 흥행수익 1억달러를 넘었을 때 모든 것이 바뀌었다. 홍콩과 아시아영화에 대한 장벽이 마침내 무너진 것이다.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의 무술감독 원화평이 이끄는 홍콩 무술은 이후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풍경을 바꾸어놓고 있다.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의 가장 큰 공헌은, 주인공이 20m를 날아가 발차기하는 모습을 북미의 관객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매트릭스>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한쪽 발을 눈높이로 쭉 뻗은 모습은 영락없이 이연걸이 연기한 황비홍의 모습이다. 워쇼스키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홍콩영화의 열혈팬이었고, 원화평을 초빙하여 <매트릭스>의 무술장면을 디자인했다. 홍콩 액션스타일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매트릭스> 이후. <미녀 삼총사> <무서운 영화> 심지어 <슈렉>까지 수많은 영화들이 ‘매트릭스풍’의 무술장면을 차용하기 시작했다. 콘의 뮤직비디오 에서도 홍콩영화의 흔적이 보이고, 손기술 위주이던 스티븐 시걸까지도 와이어를 달고 공중 발차기를 해야만 하는 시절이 온 것이다.

타란티노, “홍콩 무술이 할리우드 사로잡을 것”

하지만 <매트릭스>가 어느 날 갑자기 저 세상에서 반짝, 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다. 홍콩영화 붐은 이미 오래 전부터 꾸준하게 일고 있었다. 아시아영화를 할리우드에 소개한 일등공신 쿠엔틴 타란티노가 시나리오를 쓴 <트루 로맨스>에는 만화가게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차이나타운에 가서 소니 치바가 나오는 일본 액션영화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70년대부터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의 영화들이 차이나타운을 통하여 소개되었고, 흑인들은 일찌감치 아시아의 무술에 열광했다. 성룡이 크리스 터커와 짝을 이루어 <러시 아워>로 할리우드에 데뷔했고, 이연걸이 <로미오 머스트 다이>와 <크레이들 2 그레이브>에서 연이어 흑인과 팀을 이루는 이유는 그것이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소수 열광팬이 지지했던 홍콩 무술영화는 마침내 할리우드의 주류로 성장했다.

<순류역류>

<와호장룡>

쿠엔틴 타란티노의 추천으로 홍콩 영화인들이 속속 할리우드로 향하기 시작한 것도 90년대 중반이다. 가장 먼저 도착한 오우삼은 1993년 <하드 타겟>으로 테이프를 끊었다. 장 클로드 반담이 쌍권총을 들고 허공을 나르기는 하지만, <하드 타겟>은 조금 특이한 할리우드영화일 뿐이었다. 이어서 임영동의 <맥시멈 리스크>가 96년. 서극의 <더블 팀>이 97년에 나왔다. 모두 장 클로드 반담 주연이었다. 홍콩 스타일의 액션은 별로 돋보이지 않았고, 아직 상품가치가 남아 있었던 장 클로드 반담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이었다. 그러나 <브로큰 애로우>가 성공을 거두면서 오우삼에게 자신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마침내 <페이스 오프>로 할리우드와 홍콩의 행복한 결혼이 이루어졌다. 80년대에 이어 재도전을 한 성룡의 <러시 아워>(1998)도 성공을 거둔다.

그 모든 험난한 여정을 거친 뒤, 마침내 <매트릭스>가 등장한 것이다. 홍콩 무술이 할리우드를 사로잡을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은 바로 ‘떠벌이’ 쿠엔틴 타란티노다. 오우삼과 성룡으로 대표되는 “홍콩 액션영화들은 할리우드 액션-어드벤처의 레벨을 바꿔놓았다”며 “<매트릭스>와 <와호장룡>이 나오기 전부터 원화평 감독에 이연걸과 견자단을 기용하면 최고의 영화가 나온다고 미라맥스에 말해왔다”고 타란티노는 자랑스레 말한다. <철마류>의 북미 개봉을 제안한 것도 타란티노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홍콩 스타일의 액션영화들은 서구인들 위한 영화이다. 아이들도 즐길 수 있을 만큼, 폭력의 강도도 세지 않다. 익살스럽게 안무된 성룡의 액션은 하나의 유쾌한 오락이다. 홍콩 배우들이 등장한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 중국의 신화와 역사를 알 필요는 없고, 마찬가지로 중국 무술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도 않는다. 워쇼스키 형제나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마니아’가 아니라면, 보통의 감독들은 홍콩 액션을 그저 순간의 볼거리로만 차용하는 것이다. 홍콩 감독들이 장 클로드 반담을 기용하여 만든 영화는 여전히 ‘반담 영화’였고, 이연걸이 출연해도 <리쎌 웨폰4>는 여전히 시리즈물의 관행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게 여전히 남아 있는 할리우드의 한계다. 그래서 이연걸의 할리우드영화는 점점 싱거워지고, 그저 무술장면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액션영화가 되고 있다.

홍콩-할리우드, 액션을 소화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것은 액션에 대한 할리우드와 홍콩의 개념 차이에서 비롯된다. 할리우드영화에서 액션장면은 종종 스토리라인을 멈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홍콩영화에서는 액션이 스토리라인 그 자체를 이루고 있다. 경극에 기반한 홍콩영화의 액션은, 액션 자체가 역할을 설명하고 상황을 끌어간다. 홍콩영화에서는 액션장면에서 드라마틱한 긴장과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성룡이 출연했던 <사형도수>나 <취권>을 떠올려보면 잘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액션은 단지 싸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상황이 바뀌고, 해결되는 과정에 액션이 필수불가결하게 개입된다. 또한 홍콩영화는 액션을 끊이지 않고 보여주기 위해서 설계된다. 마치 영화 속에서 춤을 보여주듯이. 무용을 배운 오우삼이 춤의 안무처럼 액션장면을 설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무술감독들은 계속하여 새로운 액션장면을 개발하여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성룡이 그랬고, 서극이 그랬듯이.

일반적으로 할리우드영화는 액션장면에서 배우가 아니라 시각효과가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 빠른 편집, 쉴새없는 카메라의 움직임, 드라마틱한 배경음악과 음향효과가 흥분을 끌어낸다. 또한 할리우드영화는 무술장면을 어떻게 이야기와 접합시키는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은 로버트 클라우스 감독이 20년 전 <용쟁호투>를 찍었을 때도 보여준 문제점이다. 지금 <더 원>이나 <크레이들 2 그레이브>에서도 똑같은 실수를 거듭한다. 이연걸의 무술 연기는 계속 편집에 의해 끊어진다. 상황의 관계를 보여주지 않고, 단지 일부만 보여줄 뿐이다. 데이비드 보드웰은 “할리우드영화는 액션장면이 빠르게 진행되지만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보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활기찬 홍콩 액션은 시각적으로 대단히 확연하고 풍부하다. 액션의 표현방법도 다양하고, 그것을 확대해서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 차이는 서극이 ‘할리우드는 이연걸의 무술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지 모른다”는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춤과 노래에 문외한인 감독이 뮤지컬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극이 홍콩에서 찍은 <순류역류>의 아파트 액션장면은 결코 할리우드가 만들어낼 수 없는 명장면이다. 거기에는 배우의 문제도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해도,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배우들은 홍콩의 배우들처럼 모든 액션을 할 수가 없다. 홍콩 배우들은 조금만 영화를 찍어봤다면, 어떤 액션장면이라도 바로 찍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와이어를 메고 액션장면을 찍기 위한 배우의 훈련만도 적어도 3개월이 필요하다. <매트릭스>는 그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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