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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영화사 신문 제 4호 (1908~1912) <3>
스타시스템의 탄생배우, 은막 밖으로1910년. 세인트루이스 역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녀’를, 그녀의 ‘살아 있음’을 어깨 너머라도 보기 위해 쏟아져 들어온 세인트루이스의 시민들이다. 약속된 시간에 그녀는 나타났고 시민들은 열광했다. 이제 영화에서도 ‘스타덤’이라 할 만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바로 전에 ‘바이오그라프 걸’이라고
200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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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영화사 신문 제 3호 (1904~1907) [1]
세계 영화시장은 누구 손에?프,파테와 고몽의 선두다툼 치열세계영화 시장을 둘러싸고 프랑스의 파테와 고몽의 선두다툼이 치열하다. 현재까지 우세는 파테에 기울어 있지만, 파테보다 1년 늦게 영화제작에 나선 고몽의 추격도, 그 기세가 만만치 않다.1896년 설립된 파테 프레르는 1907년을 지나면서 생필름과 카메라, 영사기 생산에서 영화의 제작과 배급, 상영까지
200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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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영화사 신문 제 3호 (1904~1907) [2]
■영화사신문이 만난 사람 ┃ 토머스 에디슨 ■“영화 만드는 데는 예술적 기술이 필요”1905년 5월6일, 미국 법원이 ‘여러 장면 영화’의 사진 저작권을 인정했다. 이로써 여러 장면 영화들의 무단복제와 판매 등이 불가능하게 됐다. 이 소송의 피고는 에디슨사였다. 현재 미국 최고의 영화제작자로 군림하고 있는 토머스 에디슨은 또한 ‘소송의 제왕’이기도 해서,
200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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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나이가 70이 되어도 실험은 멈출 수 없지˝
마지막 극영화 <먼 여행 긴 터널>(1986)을 만들기 두해 전인 84년,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로부터 전시 자문위원을 위촉받았어. 82년 일본 교과서의 우리 역사 왜곡사건이 계기가 된 독립기념관 건립은, 그해 8월28일 ‘독립기념관 건립 발기대회’를 열어, 온 국민의 이름으로 건립을 결의하고 성금 모금을 시작한 바 있었지. 1983년 8월15일
200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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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영화사 신문 제 2호 (1)
무장강도, 극장을 탈환하다!<대열차 강도> 대흥행, 편집의 대발견 <대열차 강도>의 ‘소리없는 총성’이 미국을 뒤흔들었다. 1903년, 토머스 에디슨의 영화사 회사 소속 감독인 에드윈 포터가 만든 서부극 <대열차 강도>가 지금까지 만들어진 미국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블러모으며 성황리에 상영되고 있다.17개의 장면, 필름
200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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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영화사 신문 제 2호 (2)
드레퓌스 영화 상영금지프 당국, 재심 앞두고 여론 영향 촉각1899년,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영화 상영이 전면 금지됐다. 프랑스 경찰과 검열당국은 이 사건을 다룬 조르주 멜리에스와 파테사의 영화가 여론의 향방에 좋지않은 영향을 끼친다며 이 두편의 영화는 물론,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모든 영화의 상영을 금지시킨다고 밝혔다. 멜리에스가 스스로 “재구성된 뉴스릴
200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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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클래식]
영화사 신문 제 2호 (3)
■영화사 신문이 만난 사람/조르주 멜리에스 ■“스튜디오가 바로 꿈의 공장” 1902년 상영돼 우리를 매혹시킨 영화 <달나라 여행>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 비밀을 엿보기 위해 파리 교외의 몽트뢰유 수 부아에 자리잡은 조르주 멜리에스(41)의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스튜디오란 게 꼭 온실 같구나,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가니 앞쪽에 연극무대의 배경
200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