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극영화 <먼 여행 긴 터널>(1986)을 만들기 두해 전인 84년,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로부터 전시 자문위원을 위촉받았어. 82년 일본 교과서의 우리 역사 왜곡사건이 계기가 된 독립기념관 건립은, 그해 8월28일 ‘독립기념관 건립 발기대회’를 열어, 온 국민의 이름으로 건립을 결의하고 성금 모금을 시작한 바 있었지. 1983년 8월15일 기공식과 동시에 국내외에 걸친 광범위한 전시자료 수집운동을 전개하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 겨레의 탑, 겨레의 집을 비롯하여 일곱개의 전시관과 원형극장, 특별기획 전시실들로 꾸미기 시작했어. 내가 맡은 분야는 궤도 전시(다크 라이드쇼) “영원한 불길”의 설계 총괄과 더불어 원형극장에서 상영될 특수영상 ‘서클비전’(Circle Vision)의 제작이었지. 원형극장은 35mm 영사기 9대와 24대의 스피커를 동시에 사용하여 원형으로 구성된 9면의 대형스크린의 원형영상을 방영하는 곳으로, 전세계 8곳밖에 없는 360도 원형영상관이었어. 연면적 1455.7m2(440.3평)에 최대 500명이 동시 입장할 수 있으며, 최첨단 영상기법과 최신 음향시설을 갖출 예정이어서 건립 초기부터 초미의 관심을 모은 곳이기도 했지. 1987년 8월15일 독립기념관 개관에 맞춰 상영을 시작할 서클비전 <내 사랑 금수강산>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제작, 공개되는 원형영상이었어. 그러니 그 자부심과 기대감이 대단했지. 당시 액수로 15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여된 <내 사랑 금수강산>의 연출을 맡게 된 건 나에게 ‘제3기 영상 시대-새로운 다큐멘터리, 특수 영상 시대’를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 50년대 초반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을 해오다 신필림에 입사하면서 극영화를 경험했고, 그로부터 25년간의 극영화 탐험을 마치고 새로운 영상세계에 입문한 거지. 그때 내 나이 이미 일흔에 가까운 때였어.
<먼 여행 긴 터널>을 끝으로 충무로에서 모습을 감췄던 내가 다시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곳은 88올림픽경기장이었어. 경기장 한가운데 9대의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 국내 최초 360도 영화 서클비전 제작에 도전한 거지. 이 작업을 위한 특수촬영 장비를 구하고, 제작 노하우를 익히느라 수없이 미국을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 그저 스크린용 영화만 찍을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특수영상에 도전한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무모해 보이기도 했을 거야. 특수영상의 일종인 이 서클비전의 제작으로 나의 경력에는 또 한번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지. 최초라는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는 것은 내가 그동안 개척자의 길을 걸어왔음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또한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길을 홀로 걸어왔던 쓸쓸한 여정의 방증이기도 해.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작업한 서클비전 <내 사랑 금수강산>은 얼마 전까지도 독립기념관에서 상영되다가 현재는 <우리가 만드는 세상>이란 제목의 신규 영화로 교체됐어. “앉아서 금수강산 두루두루 구경. 일반화면 9배. 360도 회전. 국난 극복현장 사계절 비경 담아 민족정기 고취”라는 타이틀로 신문 지상 등에 소개된 <내 사랑 금수강산>의 촬영을 위해 모두 9대의 카메라, 한대의 소형 헬리콥터가 동원됐고, 역시 9대의 영사기와 각각의 화면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새로운 기술이 시도됐지. 당시 내가 사용한 카메라는 월트 디즈니사에서 특수영상 촬영을 위해 쓰던 카메라를 임대한 것으로 무게가 엄청 무거웠어. 게다가 설악산 등지의 계곡을 누비고 다니기 위해선 기동성 있는 작은 헬리콥터가 필요했는데, 9대의 무거운 카메라를 싣다보니 안전에 위협을 받았지. 특히 급변하는 기류에 민감했는데, 아찔한 순간도 여러 번 있었어. 하지만 그렇게 고생하며 만들어진 360도 원형영상은 사람들에게 전혀 새로운 영상 충격과 보는 즐거움을 안겨주었어. 지금은 여러 가지 특수영상 예컨대, 시뮬레이션 영상, 입체영상, 대형영상, 인터랙티브 영상 등에 사람들이 익숙해졌지만, 당시로선 신기한 볼거리가 아닐 수 없었어. 제 1기 다큐멘터리 시기, 제 2기 극영화 시기, 제 3기 특수 영상 시기를 가로지르는 내 영상 일기는 여기까지야. 무엇보다 새로운 기술을 먼저 접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기쁨과 새로운 영상으로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은 내 인생의 화두와도 같았어. 영화는 예술이 아니라 오락이고 유행이니까. 영화에 대한 경직되지 않은 사고야 말로 이 오랜 시간 동안 영화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버팀목이었지. 자유주의자가 그린 영상 일기 어때, 재밌었는가?
구술 이형표/ 1922년생구술 50년대 미국공보원(USIS)과 국제연합한국재건단에서 군 홍보 및 기록영화 제작구술 미국 <NBC> <CBS> 특파원으로 활약하면서 뉴스 제작구술 60년대부터 극영화 86편 작업구술 <서울의 지붕밑> <말띠 여대생> <애하> <너의 이름은 여자> 등구술 80년대 중반 독립기념관을 비롯한 각종 전시관 기획, 설계, 시공 총괄구술 현재 등급위와 진흥위원회에서 활동 중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 /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