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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전영객잔] 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지면을 빌려 현대영화의 스토리텔링에 닥친 의미심장한 변화에 대해 말해왔다. ‘21세기 영화의 한 경향’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복합 내레이션의 부상은 주류 할리우드영화와 인디, 작가영화, 예술영화를 망라하는 동시대 영화미학의 국제적 트렌드로 여겨질 정도이다. 영화학자와 평론가, 시네필, 일반 관객에 이르기까지
글: 장병원 │
201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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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전영객잔] 아름답고 아름다운 불가능한 사랑 이야기
결국 모든 서부영화는 ‘상실이라고 믿는 결핍’의 장르다. 개척정신의 신화, 남성 영웅과 공동체의 가치, 대립구도로 이뤄진 세계를 전면화하는 정통 웨스턴은 ‘신화’라는 말 그대로 그것이 환상임을 스스로 지칭하고 있다. 변형된 웨스턴이 고전기 세계의 영웅적 대결, 정의, 풍경의 몰락을 보여줄 때, 그건 앞선 환상에 대한 스스로의 인정이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글: 남다은 │
201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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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전영객잔] 복수의 성공담이 아닌, 관계의 실패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백>의 첫 고백. 유코(마쓰 다카코)는 부주의에 의한 사고사로 알려졌던 딸의 죽음이 자신이 담임을 맡은 학급의 학생 A와 B가 저지른 살인이었음을 침착한 어조로 고백한다. <고백>은 유코의 고백을 재빨리 마무리한 뒤, 이를 계기로 한 다른 인물들의 고백을 연쇄시킴으로써 동일한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한다
글: 안시환 │
201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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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전영객잔] 탈주의 끝에서 무엇을 보았나?
<웨이 백>은 하나의 도전으로 보인다. 사선을 넘나드는 강제노동수용소 수형자들의 생사를 건 탈출이라는 다분히 관습적인 장르 서사를 기저에 깔고 있는 <웨이 백>은 탈주 장르 특유의 드라마틱한 여정을 앞머리에 내세우지 않는다. 피터 위어는 거대한 허전함을 느끼게 하는 절제를 통해 폭력의 역사 뒤로 밀려난 존재의 비의를 매우 예외적인 방
글: 장병원 │
201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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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전영객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낳은 분열
*스포일러에서 시작하는 글입니다.
<두만강>의 쟁점에 대해서는 이미 795호에 정한석(‘마술처럼 흔들리는 취권의 순간들’)과 정성일, 허문영의 씨네산책(‘그는 경계에 서 있다’)이 상세히 밝혔다. 그들이 짚어낸 공통된 쟁점은 이 영화 속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데, 순희가 탈북자에게 겁탈당하는 장면, 그때 생긴 아이를 낙태하는 결정, 그리고 영
글: 남다은 │
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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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전영객잔] 모든 서부영화에 대한 리메이크
<더 브레이브>는 시대착오적인 듯한 느낌을 준다.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웨스턴 대부분이 수정주의 웨스턴의 길을 걷는 이 시대에, <더 브레이브>는 이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수정주의 웨스턴의 서부에서 시작해서 고전 웨스턴의 서부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코언 형제는 이러한 시대착오성을 감추기보다는
글: 안시환 │
201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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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전영객잔] 오해를 통해 이해로 갈 수 있다면
윤성현의 <파수꾼>에 대해서는 이미 촌평(<씨네21> 782호 ‘2010 독립영화 결산 보고서’)을 쓴 바 있다. 짧게 썼지만 하려고 했던 말의 요체는 거기 다 들어 있다. <파수꾼>의 참된 성취는 2000년대 이후 세계영화의 흐름을 격변시킨 현대 내레이션의 혁신에서 찾을 수 있다. 홍상수와 박찬욱의 주목할 만한 시도들이
글: 장병원 │
2011-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