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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
<해변의 여인> <괴물> 촬영감독 김형구
사방이 온통 빛이다. 김형구 촬영감독의 언덕배기 집에 들어서니 왈칵 눈이 부셨다. 높다란 벽마다 널찍이 뚫린 창이 불러들인 정결한 겨울 햇살 때문이다. 김형구 촬영감독과 부인 신보경 미술감독은 커튼 한장 걸 엄두를 내지 않았다. 동쪽 창에서 돋아난 해가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 창으로 기우니, 자오선을 품에 안은 셈이다. “처음에는 벽에 그림을 걸까도 생각했지
글: 김혜리 │
사진: 이혜정 │
2007-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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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
호모 루덴스, 미학자 진중권
찻잔을 감싼 손가락이 굵고 험했다. 책장을 뒤적이는 인문학자로서는 몹시 투박한 진중권의 손에는 옹이가 박혀 있었다. “어려서부터 목공을 해서 성한 데가 없어요.” 최근에는 메서슈미트 전투기 모델과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에 나오는 비행정 모델을 조립했다. 두드리면 현금 출납기 영수증처럼 좌르륵 출력되는 진중권의 말 속에는 “놀다”라는 동사가 자주
글: 김혜리 │
사진: 손홍주 │
200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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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
천생 홍일점, <타짜> 배우 김혜수
완전한 문장으로 말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배우 김혜수는 그중 하나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마침표에 깃발을 꽂을 때까지. 지저귀듯 김혜수가 쏟아내는 단어들은 고른 리듬으로 방울져 떨어지다가 이따금 따르릉 꾸밈음을 섞는다. 바흐 평균율 피아노 조곡을 한 옥타브 올려서 듣는다면 비슷할 것이다. 영화 <타짜>의 형식은 김혜수가 분한 정
글: 김혜리 │
사진: 이혜정 │
2006-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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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
그 살벌했던 날의 능소화, 소설가 박완서
“내가 입때 살아온 얘기만 풀어도 소설로 열권은 넘어.” 미장원에, 목욕탕에 둘러앉은 아주머니들은 훈장을 흘긋 내보이는 퇴역 군인처럼 속삭이곤 했다. 열권이 다 뭔가. 1970년 <여성동아> 장편 공모에 입상한 <나목>으로 문단에 입적한 소설가 박완서(75)는, 36년 동안 100편이 넘는 장·단편 소설을 썼다. 10만 고정 독자를
글: 김혜리 │
사진: 오계옥 │
200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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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
<괴물> <우아한 세계> <시크릿 선샤인>의 배우 송강호
송강호는 진작부터 ‘괴물’이라 불린 배우다. <넘버.3>가 세상에 나온 1997년부터다. 그는 농부보다 사냥꾼에 가깝다. 수확을 위하여 씨 뿌리고 김매고 기다리는 것은 도무지 송강호의 스타일이 아니다. 목표물을 포획하기 위한 준비는 예리한 후각과 잘 이완된 근육, 제대로 간수된 무기로 족하다. 어떻게 덤벼들어 잡을 것이냐를 그에게 꼬치꼬치 묻지
글: 김혜리 │
사진: 이혜정 │
200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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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
생이 머물다 간 ‘빈집’을 찍는 사진가 구본창
억수 같은 비가 내린 토요일 오후 구본창(53)의 조선 백자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사간동 국제갤러리를 찾았다.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거리를 겨우 건너 들어선 전시장은 감쪽같이 평온하여, 오래된 능 속 같았다. 둘러선 벽마다 걸린 달 항아리와 사발, 연적과 종지의 사진에는 물기라곤 없었다. 백자들은 도화지에 2B연필로 그린 소묘처럼 벽과 바
글: 김혜리 │
사진: 오계옥 │
200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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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
한국 책의 숨쉬는 역사, 출판 디자이너 정병규
책이 무엇인지 책에게 물어볼까 싶어 사전을 열었다. “①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낸 글이나 그림을 종이에 인쇄하거나 적거나 하여 여러 장을 한 묶음으로 해서 꿰맨 물건의 총칭. ②종이를 여러 장 겹쳐서 꿰맨 물건”. 어영부영 넘기려는데 책(冊)자가 눈에 불쑥 뛰어든다. 한 덩어리로 묶은 종이 더미를 옆에서 본 형상이, 말보다 명쾌하다. 책은 몸이 있어서
글: 김혜리 │
사진: 이혜정 │
200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