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문장으로 말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배우 김혜수는 그중 하나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마침표에 깃발을 꽂을 때까지. 지저귀듯 김혜수가 쏟아내는 단어들은 고른 리듬으로 방울져 떨어지다가 이따금 따르릉 꾸밈음을 섞는다. 바흐 평균율 피아노 조곡을 한 옥타브 올려서 듣는다면 비슷할 것이다. 영화 <타짜>의 형식은 김혜수가 분한 정 마담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다. “3년 동안 모은 돈을 잃었을 때 고니는 문득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대요. 하지만 어떡하겠어요? 모두 겪는 일인데.” 유들유들한 김혜수의 구연(口演) 속에서 영웅 고니(조승우)는 어쩐지 동화 속 ‘빨간 모자’처럼 작고 미숙해진다. <타짜>는 정 마담의 ‘무대’ 위 모습만 보여준다. 번민과 망설임은 어디까지나 막후의 일이다. 정마담은 말하자면 세상이라는 관객을 속여 넘기려는 무모한 배우다. 극중에서 그녀의 시간은 조각나 있다. 고니를 잃어버리고 재회하기까지 가장 괴로웠을 시기의 정 마담은 슬쩍 화면 뒤로 사라진다. 김혜수가 영화 <깜보>(1986)로 연기를 시작한 것은 스무해 전이다. 무대에 올라와서 보낸 생이 그렇지 않았던 시간을 넘어선 지 오래다. 내가 기억하는 10대 시절 김혜수는 다이알 비누 냄새가 났다. 1980년대 초 석래명 감독의 청춘영화에 나온 강주희 같은 스타를 연상시키는 건전함과 고지식함이 그녀에게 있었다. 그런가 하면 소녀 김혜수는 남자들의 눈에 이미 만개한 여인이었다. 사람들은 일찍부터 그녀에게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 역을 안겼고, 소녀는 익숙해졌다. 모성에 대해 당신이 말머리를 꺼내면 김혜수는 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어려서 후덕하고 노숙한 역을 감당했던 이 배우는, 갈수록 욕망에 연연하는 여성 캐릭터로 역행하고 있다. 그러나 커리어를 통틀어 그녀가 연약함을 내세운 기억은 찾기 힘들다. <곰탕>(1996), <국희>(1999), <닥터 봉>(1995), <영원한 제국>(1995), <YMCA 야구단>(2002), 무작위로 출연작을 꼽아봐도 김혜수는 대체로 셌다. 발차기, 추진력, 인내, 활력, 관능, 계교, 애교 등등, 여자에게 허락된 무기고를 김혜수는 다 가진 양 보였다. <신라의 달밤>에서 김혜수가 인질로 잡힌 장면은 그래서 어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납치범에게 일갈한다. “그 사람 안 온다. 이 자슥아!” 신작 <바람피기 좋은 날>(감독 장문일)에서 바람난 주부로 분하는 김혜수는 “널 감방에 쳐넣을 거야”라고 협박하는 남편에게 “난 널 지옥에 쳐넣을 거다!”라고 대꾸한다. 또한 김혜수는 천생 홍일점이다. 이를테면 남자들이 ‘힐끔힐끔’ 보는 부류의 여자다. 김혜수 하나만 있어도 영화 한편의 에스트로겐 정량이 꽉 찬다. 남자 틈에 낀 배역이 잦은 반면 다른 여배우와 비슷한 비중을 나누는 작품이 적었던 것도 같은 이유일 거다. <타짜>의 최동훈 감독은 정 마담이 누구인지 모호한 상태에서 김혜수를 만나 “이 여자는 태(態)가 멋지구나. 정 마담이라면 저렇게 앉고 걷지 않을까?” 거꾸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김혜수는 모델로서의 배우를 생각하게 만든다. 하긴 그녀에겐 패션모델의 속성조차 있다. <사과꽃 향기>와 <복수혈전>의 장용우 PD는 김혜수가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캐릭터를 연출하는 데에 천재적이라 했다. 김혜수 영화의 관객은 다음 장면에 그녀가 뭘 입고 나올지 무의식적으로 기대한다.
대화하는 동안 김혜수는 말끝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그건 다소곳한 겸양이라기보다 다부진 선언에 가까웠다. 나요? 매우 부족해요. 하지만 내 결핍을 제일 잘 아는 자가 나인 한, 겁날 것 없어요, 라고 못박는 듯 들렸다. “오해받을 수 있죠. 하지만 상관없죠.” 숱한 불안과 자괴를 건너온 20년차 여배우의 잠정적 결론이었다. 자주색 페디큐어만 걸치고 온 맨발의 배우는 나른한 4분의 3박자로 실내를 걸어다녔다. 그녀는 확실히 자기 심장에 내장된 메트로놈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안색이 창백하네요. 과거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혈압이 낮다면 자각하는 피로가 클 텐데 어쩌다 건강의 표상이 되셨는지. 드라마 <장희빈> 후반부 보면서 “저 사람이 지금 정말로 숨쉬기 힘겹구나”라고 느낀 적이 있어요. =연기력이 딸린 탓도 있죠. 제가 또 발성이 안 좋잖아요? 그래도 <장희빈> 하면서 조금 목이 텄죠. 다 건강한데 혈압만 심하게 낮아서 문제 생기면 늘 그쪽이에요. 그래서 <장희빈> 후반부는 발악하는 장면을 처음이나 끝으로 몰아 찍도록 안배하는 것이 스케줄 짜기의 관건이었어요.
-어려서 일을 시작하다보니 애쓰는 자세가 제2의 천성이 되어 몸이 벅차도 스스로 안 힘들다고 믿고 나아가 남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게 된 건 아닌가요? =제가 건강함을 주장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기력이 달리다니 제게 어울리기나 해요? 엄살 떠는 배우는 흉하잖아요. 하지만 겨울 되면 몸이 얼어 깨질 것 같아요. 밤 촬영을 하다가 눈을 깜박이면 전기장판 7번 다이얼 오렌지색 불빛의 환각이 휙휙 지나간다니까요. (웃음)
-“<올드보이>는 배우 최민식씨의 갤러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박찬욱 감독님이 표현한 적 있어요. <타짜>는 한편으로 김혜수씨의 갤러리 같습니다. 전에 없던 면모를 발견하거나 더 깊이 들어가진 않았으나 배우 김혜수가 지닌 임팩트가 강한 요소들을 추려서 꿰어놓은 인상이죠. =최동훈 감독님은 배우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은 연출자로 손에 꼽혀요. 익히 아는 것을 다루면서도 새롭게 느끼도록 만드는 연출자죠. 대사도 평소 쓰는 단어를 쓰는데 조합이 비범하잖아요. 진한 감정을 끌어내거나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담을 건 다 담아내는데 배우도 편안하고 관객도 좋아해요. 그거, 아무나 못해요. 여행 도중 최동훈 감독님이 프러포즈했다는 소식 듣고 처음엔 안 믿었어요. 잘나신 감독님들은 저를 찾는 경향이 워낙 없거든요. (웃음)
-자신을 깎아내려 말하는 습관이 있네요. =아뇨, 사실이에요. 제가 연기를 오래 했는데 그동안 행적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죠. <타짜> 제안에 너무 좋아 “나 그거 할 거야, 딴 사람 못하게 해”, 농담 반 진담 반 그랬는데, 막상 돌아와 시나리오를 보고는 철렁했어요. 저는 제게 없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배우는 못 되거든요. 정 마담이 되기엔 가진 게 너무 없었어요. 좋은 감독 만날 기회도 힘들지만 좋은 배우들과 공연할 기회도 드문지라 욕심은 났지만 까딱하다 영화에 누가 될까봐 고민했죠. 보통 저는 고민이 오래가면 마음을 접는 쪽이에요. 그런데도 <타짜>에는 맹목적인 욕심이 생겼고 재능있는 사람들 틈에서 최대한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어요. 촬영 시작 뒤에도 한참 동안 확신이 없었어요. 다른 훌륭한 배우들을 못 따라간다는 스트레스가 심했고 완벽하게 돌아가는 현장상황에 주눅들기도 했어요.
-왜 자꾸 ‘나만 다르다’, ‘나만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그랬어요. 나를 선택한 연출가가 실망하는 일을 참을 수 없었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날 마음이 편해졌어요. 사실 그날 촬영장면이 전혀 편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하필 그 다음 촬영이 2주일 뒤라 그 느낌이 사라지면 어쩌나 걱정했죠. 제가 정 마담만 끼고 살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2주 뒤에도 편안함이 지속됐어요.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정 마담의 운명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거예요. 물론 최동훈 감독님은 어떤 식으로든 정 마담을 살려내긴 했겠죠. 캐릭터는 보호하고 배우 약점은 커버하는 것이 감독의 일이고 그런 재능이 뛰어난 감독이시니까. 그러나 배우로서 저는 자괴감에 빠졌을 거예요.
-<범죄의 재구성>의 염정아씨 연기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염정아씨는 정말 잘하는 연기자죠. 사람들이 그걸 잘 몰랐어요. 1996년에 같이 드라마를 했는데 보태지도 덜하지도 않는 세련된 연기를 한다는 걸 느꼈어요. 대개는 괜히 힘써서 열연하지 않으면, 어색하거나 부실하거든요. 저도 그랬고요. 다 타이밍이 있는 것 같아요. 보석이 세공을 해야 보석이지 그냥은 원석이잖아요? 좋은 배우는 역시 시간을 두고 볼 일이에요. 염정아씨, 박찬욱 감독님 <쓰리, 몬스터>의 프롤로그에서도 멋지지 않았나요?
-말씀하신 타이밍이 오기까지 시간을 벌고 버틸 수 있느냐가 배우의 관건인 것도 같네요. =<타짜>에서 김혜수의 엑기스가 나왔다고 앞으로 계속 엑기스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뭐가 한번 발현됐다고 죽 연기가 상승하지는 않아요. 그런 기회가 앞으로도 찾아올지, 내가 그 기회를 만들지, 다른 누가 만들어줄지는 몰라요.
-정 마담이 보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내면을 드러내는 유일한 장면이 목욕신입니다. 예전 출연작에도 김혜수씨의 관능미를 보여주는 목적이 두드러진 장면들은 있었죠. 당신이 눈앞에 있으면 감독들이 그런 신을 찍지 않고 못 배기는 뭔가가 있을까요? =친해지고 나면 저 그런 매력 없어요. <타짜>는 영화의 본질이 에로틱함과는 거리가 멀죠. 고니와 정사 이후 신도 원래 그렇게 처리할 계획은 없었어요. 처음에 감독님은 등 정도가 노출되고 걸어가 가운을 입는 모습이라고 했어요. “제 등판을 엎으면 거기다 화투를 쳐도 될걸요?” 말씀드렸죠. (좌중 폭소) 찍다가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려 우연히 가슴이 드러났는데 결과를 보니 그게 맞는 것 같았고 편했어요. 사실 아까 말씀드린 제가 편해진 시점이 아이로니컬하게도 바로 그날이에요. 그런 장면 찍는 날 편해졌다고 하면 오해할지도 모르겠는데, 제가 노출한다고 주눅 들어서 할 걸 못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몸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제가 정신 나갔나요, 뭐? 배우는 캐릭터에 맞게 움직이는 거지. 영화에 정 마담 뒷모습이 많이 나오지만 그녀는 고니에게만 자기의 모든 뒷모습을 보여줬어요. 정말 사랑한 거죠.
“대학생때 나름 작은 가출을 했었는데, 아파트 단지에서 길을 잃었죠”
-미동초등학교, 덕성여중, 배화여고가 모교입니다. 서울의 오래된 동네에서 자라셨네요. =태생은 부산인데 그곳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가 무역을 하는 아버지 일 때문에 서울로 이사했어요. 부산 시절 단짝친구와 사후세계, 우주인, 마의 삼각지대 등이 공통관심사여서 공원 잔디밭에 나란히 누워 별자리를 그리고 며칠 뒤 뭐가 변했나 왜 변했나 따지고 놀았어요.
-초콜릿 음료 CF의 태권소녀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는데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 뭘 배우는 걸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 학원 여섯개를 다녔어요. 뭐든 빨리 배우고 내실은 없고. (웃음) 미동초등학교에는 국가대표 태권도 어린이 시범단이 있었는데 정원 스무명 남짓에 성적도 평균 90점 이하로 떨어지면 제명당했고 태권도부 주장이 항상 전교 학생회장이었어요. 디자이너한테 맞춘 유니폼 입고, 머리카락도 미장원 가서 똑같이 동그랗게 자르고 다녔는데 저는 그 유니폼을 입고 사범님 앞에서 “태권!” 거수경례를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 동기로 입단한 애는 나뿐일 거야. (웃음) 여자가 저 하나였는데 엄마가 눈에 잘 띄라고 머리에 큼직한 꽃까지 달아줬죠. 88올림픽 유치 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방한했을 때 첫 시범에 나갔고 말 그대로 꽃순이(꽃다발 전하는 어린이, 花童)까지 했어요.
-드라마 <한강수 타령>에서 형제 많은 집 맏딸 역에 무척 편하게 어울리더군요. =저희 집이 오남매예요. 둘만 낳자는 시대에 부모님이 아무리 정이 좋으셔도 유분수지. (웃음) 우리는 식구끼리 친구고 비밀도 없어요. 부모님 낀 외식이 한달에 한번, 남매끼리 식사는 매주 한두번씩 해요. 다섯 남매가 외모도 취향도 판이한데 식성도 어찌나 다른지! 돌아가며 장소를 정하는데, 누군가가 감자탕을 꼭 먹어야겠다면 내가 못 먹어도 같이 가주는 식이에요. 어려서는 남동생들과 야구하고 목욕탕에서 첨벙거리며 같이 놀았어요. 중학생 때까지는 초등학생 버스 요금 내도 통할 만큼 성장이 더뎠기 때문에 스스럼없었죠. 저는 연기하면서 키가 크기 시작했어요.
-10대에 스타가 된 딸의 일을 돌보느라 어머니가 바쁘셨을 텐데, 보살핌을 덜 받은 형제가 박탈감을 느끼거나 거꾸로 김혜수씨가 가진 부채감은 없었나요? =미성년은 물론이고 성년이 된 뒤에도 어머니가 지나친 보호를 하셨죠. 결과적으로는 덕분에 뒤늦게 진짜로 개방적인 사람이 됐고 감사해요. 그때만 해도 연예계 분위기가 부모님 입장에서 그리 안전한 사회가 아니었어요. 아버지는 늘 그만두기를 종용했고 저도 연예계에 애착을 갖진 않았어요. 그저, 아이인 내가 어른들 사이에 끼어 있고, 그들이 어른 중에서도 특별한 어른-예술가라는 점이 매혹적이었죠. 무슨 얘기였죠? 맞다, 부채감. 막내와 제가 여덟살 차이인데 어느 날 봤더니, 막내가 훌쩍 큰 거예요. “누나! 엉아!” 이러던 아기가 많이 컸는데 그 애가 자라는 과정을 나 혼자만 못 봤다는 생각이 드니 무척 슬펐어요. 얼핏 들었는데 항상 엄마가 제 곁에 계시니까 어린 막내가 “엄마, 작은 누나가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한 적이 있대요. 동생들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막내에게 제일 미안해요. 여덟살 차이는, 막내만 아니면 연애도 할 터울이지만(웃음), 제겐 아들 같아요. 언니랑 저는 한살 차이라 자매끼리 질투할 법도 하죠. 그런데도 엄마가 옷 두벌을 사오면 언니는 늘 저더러 먼저 고르라고 했어요. 제가 “이거 내 거!” 찜하고 남은 걸 언니가 가져가면 전 또 주책없이 “이것도 내 거!” 소리쳤죠. 언니는 “그럼, 그것도 너 해” 하는 아이였어요. 언니는 동생이 예쁜 게 기뻤나봐요. 고등학교 때까지 방을 같이 썼는데, 제가 자다가 깜짝깜짝 놀라면 손을 끌어다 뺨에 대고 발을 부벼줬어요. 저를 돌보느라 없는 엄마 대신 살림도 챙겼고 어디 나가서 예쁜 물건 보면 자기 것 대신 제 것을 사왔어요. 그래서 저는 예쁜 물건 보면 언니를 생각해요. 평생 저와 언니 사이엔 언니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다짐이 박혔어요.
-김혜수씨는 고교 재학 당시 이미 장안의 소년들이 품은 성적 판타지의 대상이었습니다. 말씀대로라면 고교 진학 뒤 부쩍 성장하신 셈인데 자기도 낯선 몸이 타인에게 환상이 된다는 점이 생경하지 않았나요? =스타를 동경한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고교 때까지는 저에 대한 남들의 호기심도 자각하지 못했어요. 정신적 사춘기는 몸의 성장보다 더 늦어 대학 가서야 왔어요. 내 인생의 너무 큰 부분을 할애하는 일 안에 정작 내 의지가 빠져 있다는 점을 자각하면서 허깨비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로부터 십몇년을 누워서 허공을 보면 내 인생 어디로 가나 생각뿐이었죠. 언젠가는 싫은 주말극에 억지로 출연했는데 우울을 못 이겨 집에 안 들어가고 마냥 걷다가 아파트 단지에서 길을 잃었어요. 혼자 집을 나가본 적이 있어야지. 대학생인데 얼마나 한심해요? 나름 작은 가출이었는데, 4시간 동안 헤매다 할 수 없이 공중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데리러 오셨어요. “뭐가 문제냐?”고 물으셨는데 제대로 설득력있는 논리도 내놓지 못했죠. 그것밖에 안 되는 제가 오랫동안 서글펐어요. 그런 에피소드는 1996년까지 이어져요.
-등하굣길도 차로 실어가고 태워오는 식이었군요? =대학 3학년 때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는데 엄마는 남자친구 사귀지 말랬어요. 다른 형제는 자유로운데 나만 (배우라) 안 된다는 거죠. 그런데 사람 좋아하는 일이 어디 멈추어지나요? 결국 남들도 기자들도 다 알았는데 집에서만 몰랐죠. (웃음) 학교 선배와 숨어서 연애할 때 낙이 있었죠. 학교 후문에 ‘야, 들어가보자’라는 카페가 있었어요. 주인 아주머니가 참 좋은 분이었어요. 쟤들이 참 안됐구나 알아보셔서 폐점 시각 넘겨도 문도 안 닫고, 제일 구석자리에 등돌려 앉게 해주시고, 커피 연신 리필해주시고 모르는 척해주셨어요. 교수님 중에도 너희 갈 데 없으면 교수실에서 만나라고 말씀하신 고마운 분도 있었어요.
“모든 걸 담아내면서도 공기처럼 자유로운 상태, 제가 그랬으면 좋겠어요.”
-10대부터 실제보다 나이 많은 인물을 연기하다가 <첫사랑>(1993)에 이르러서야 자기 나이로 돌아왔습니다. 초기작 중 비평적 평가가 제일 높았던 작품이라, 이 영화의 연기가 알게 모르게 후일에도 영향을 끼치진 않았나요? =특별히 상기한 적은 없어요. <첫사랑>의 제작자는 다른 배우를 원했는데 이명세 감독님이 누군가의 결혼식에 갔다가 김혜수의 본질을 보셨다며 저를 주인공으로 원하셨어요. 당시 저는 나이보다 성숙한 아이로 알려진 연예인일 뿐 누구 한 사람 그렇게 들여다보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학생 아니랄까봐 “이 영화의 테마가 뭐냐?”고 물었더니 “첫사랑의 열쇠를 통해 들여다본 시간의 비밀”이라고 하시더군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시사회 날 동네 골목 안에서 계절이 바뀌는 에필로그를 보며 비로소 이해했죠. 지금 다시 하면 영신이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도 1년에 한두번 다시 보는 영화인데 몇해 전 <아멜리에>를 보다 영신이가 생각나서 뉴욕에 머물고 계시던 이명세 감독님께 메일을 쓰기도 했어요.
-<신라의 달밤>에서, 소년부터 아저씨까지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경찰서에 김혜수씨가 들어와 애교스런 “죄송합니다” 딱 한마디 대사만 반복해 모든 사람이 몸둘 바를 모르게 만드는 상황이 인상적이었어요. =시나리오가 더 재미있었어요. 저는 코믹한 연기를 하면 조금 작위적으로 보이는 콤플렉스가 있어요. 물론 그런 면 때문에 강한 이미지를 새겼고 아직까지도 로맨틱코미디 시나리오가 들어오지만 제가 가장 싫어하는 제 모습이에요.
-하지만 그런 장면이 김혜수씨이기 때문에 성립하는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들을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여성성 농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거죠. <신라의 달밤>이나 <YMCA 야구단>처럼 혼자서 두 남자를 감당하는 구도도 어울리는 반면, 다른 여배우와 나란히 동등한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은 드문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그래서 윤진서씨와 남편 몰래 연애하는 두 주부로 나오는 신작 <바람피기 좋은 날>이 특이해 보여요. =남자 사이에 있거나 혼자 하는 작품은 해봤는데 여자 둘이 하는 기회는 없었네요. <바람피기 좋은 날>의 비중은 제가 1/3 정도 작아요. <바람피기 좋은 날>은, 제가 요즘 몰두하는 정서에 맞는 작품이어서 선택했어요. 모든 걸 알고 담아내면서도 공기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상태, 제가 그랬으면 좋겠어요.
-김혜수씨는 가만히 있어도 일종의 파장을 내보내는 듯합니다. 표현을 하면 자신의 의도보다 강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느낀 적이 없나요? 조금만 움직여도 효과가 세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경험적인 경계심이 있을 듯도 합니다. =그 경계심은 늦추어선 안 될 것 같아요. 아마 관객은 아실 거예요. 저는 자연스럽게 밝게 했다고 생각하는데 과장돼 보일 때가 있어요. 감정이 폭발할 때도 적정수위를 넘어 위험할 때가 있고요. 특히 영화에서 그것은 장점이라기보다 핸디캡일 때가 더 많아요.
-<김혜수 플러스 유>도 진행하셨지만, 자신이 자아내는 긴장을 풀기 위해 화술이 세련된 건 아닐까요. =그렇게 유연한 사람은 못 돼요. 어색하거나 적응할 수 없는 공기가 느껴지면 못 참죠. 그래서 <김혜수 플러스 유> 스탭들이 힘들었어요. 첫 녹화 앞두고 작가에게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더니, 진심으로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된다고 했어요. 제가 말을 좀 곧이곧대로 듣거든요? 첫 게스트로 신동엽씨가 나왔는데 혼자 이야기 잘하시기에 진심으로 감동하면서 들었죠. 그런데 중간 휴식시간에 작가들이 사색이 됐어요. 진심도 진심이지만 방송이니까 잘 듣고 있다는 리액션의 제스처가 필요한데, 저는 진짜 사람들이 경청할 때 짓는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웃음) 방송의 진실은 따로 있는데 몰랐던 거죠. 방송 초반 모니터를 해보니 마음에 드는 게스트가 오면 흥분한 티가 역력하고, “내가 왜 이 사람과 이야기해야 하나” 하는 교만한 생각이 드는 날은 아예 딴 데를 보더라고요. <김혜수 플러스 유>는 소중해요. 동료들을 다시 보고 사랑하게 만들어준 프로그램이에요. 나에 관한 선입견은 질색하면서 남에 대한 편견이 있던 나를 돌아봤고 배려란 상대방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어요. 가까운 이들은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저의 표현이 부드러워졌다고도 해요.
-<신라의 달밤> 이전과 이후로 연기 표현의 크기가 달라졌다는 느낌인데요. =사실 <신라의 달밤>을 하기 전에, 만 서른이 되면 일을 그만둘 생각을 했어요. 일단 재능의 한계를 느꼈고, 늘 타블로이드를 장식하는 사람이라는 연예인에 관한 오해도 싫었어요. 연기자의 본질을 고민하기 시작하니 제 빈약함을 자각했고 인생에 대해서도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시점이 온 거죠. 화려한 은퇴가 아니라 조용히 싹 빠지는 걸로 매니저와도 상의했어요. 한데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이런 반문이 드는 거예요. 그렇다면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활기차고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시기에 나는 예술가들 주변에 머물며 그들의 활력을 받고 문화공간과 취향을 얻었다, 그것만으로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의미가 너무 약한 것도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유보를 하고 약간 비굴하게 (웃음) 매니저와 의논해 <신라의 달밤>을 선택했어요. 3년간 영화를 쉰 다음인데 당시 영화계에서조차 저를 연기자로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좀 심한 표현 아닌가요? =아뇨. 들어오는 작품을 보면 알죠. 저는 누구나 아는, 연기 패턴도 알 만한 연예인일 뿐이었어요. <신라의 달밤>은 제가 딱 한번 전략적으로 선택한 작품이에요. (웃음) 한국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안정적인 코미디 연출가, 남자배우 투톱, 흥행이 부담스럽지 않고 영화에 대해 절대적으로 책임지지도 않아도 좋은, 자연스레 영화로 복귀하기 적당한 작품. 대외적 기점이 <신라의 달밤>이라면 옴니버스 <쓰리>의 <메모리즈>는 대내적 기점일 거예요. 김지운 감독님은 저를 누구나 보는 김혜수로 보지 않았어요. 지금은 그동안 찍은 영화들이 있어 다른 면이 알려졌지만 당시로는 김지운 감독 단 한명만 그것을 봐주셨어요. 그래서 평생 고마워할 것 같아요. 이제 저의 결심은 하는 동안은 마음 가는 대로 하자는 거예요. 전략도 캐릭터의 변별성도 필요없어요.
“밤새 촬영한 뒤 뺨이 팬 제 얼굴이 참 좋아요”
-사진 촬영할 때 지나가는 말로 콧대가 낮다고 표현하셨는데 성형을 고려하신 적이 있나요? =그러긴 너무 늦었고(웃음), 권유는 받았죠. 초창기부터 다 예쁜데 코가 낮다는 말은 많이 들었거든요. 실제로 배우들이 성형을 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어요. 아름다워지는 욕구는 본능이기도 하지만, 좋게 말하면 매체에 자신을 맞추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도 있죠. 예를 들어 저는 얼굴과 눈, 코,입이 동그래서 조명을 비추면 윤곽이 안 나와요. 여배우에게 흔히 쓰는 뽀얀 조명을 하면 호빵으로 나와요. (웃음) <타짜>의 훌륭하신 촬영, 조명 감독님이 거친 조명을 각을 잡아 샤프한 정 마담이 나온 거예요. 일을 하다보면 두분이 배우가 들으면 속상할까봐 소곤소곤 상의하는데 저는 너무 고마운 거죠. 요즘 말라서 피곤해 보인다, 나이 들어 보인다, 어디 아프냐 걱정 듣는데 저는 밤새 촬영한 뒤 뺨이 팬 제 얼굴이 참 좋아요. 한번도 그런 얼굴을 못 가져본 자(者)라 그런지, 튀어나온 광대뼈와 남자들의 불거진 턱을 좋아하죠.
-아이라인, 눈썹, 속눈썹 등 눈화장의 변화에 따라 인상의 편차가 큽니다. =제 이목구비가 부리부리한 줄 아시는데 눈 화장을 지우면 아주 흐리멍덩해요.(웃음) 아기 때 얼굴이 남아 있으면서 총기가 빠져서 나른하고 허하죠. 공허하다면 너무 심오하고 하찮은 의미로 허전해 보여요. 눈썹을 정리하면 눈두덩 폭이 무지 넓어 화장하기 좋다고들 해요. <YMCA 야구단>의 민정림은 굉장히 두꺼운 제 눈썹을 그대로 기른 경우인데 인상이 순해지면서 웃는 눈매가 달라졌죠. 사진 찍을 때면 섹시한 척도 하지만, 끝이 처져서 강렬한 눈은 전혀 아니에요. <타짜>는 붉은 립스틱이라 눈화장은 평범하게 했고 <좋지 아니한가>에서는 여성성이 희박한 여자라 화장을 아예 안 해요.
-차기작 <좋지 아니한家>의 정윤철 감독님과는 예전에 같이 참여한 영화가 있었나요? =<분홍신> 예고편 편집을 감독님이 했지만 저는 잘 몰랐어요. 언니 집에 얹혀사는 무협작가 역이에요. 처음에는 별난 정신세계를 가진 여자로 설정됐는데, 하다보니 무늬만 무협작가이지 백수가 본질 아닌가 싶었어요. 희화화하거나 미화한 백수가 아니라 그냥 백수예요. 잘 어울린대요. 우리 배우들이 일 안 할 때는 백수잖아요. 약간 엇박자의 시나리오인데 재미있었고 <말아톤> 차기작으로 이런 영화를 하시는 점이 더욱 좋았어요. 실은 엄마 역이 탐났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이모밖에 없더라고요. 그냥 그 속에 끼고 싶었어요.
-영화에서 의상과 장신구는 관객의 변신 욕망이 해소되는 부분입니다. 김혜수씨는 극중에서 옷을 유난히 자주 갈아입는 배우 같습니다. <타짜> <얼굴없는 미녀> <YMCA 야구단> 등이 예죠. 그런가 하면 시상식 야회복도 일종의 무대 의상이라고 치면, 자연인 김혜수씨의 평소 옷 취향은 이렇다 하게 잡히지 않네요. =<분홍신>이나 <신라의 달밤>은 몇벌 안 갈아입었어요. <얼굴없는 미녀>는 의상이 연출 의도의 일부였고요. 평소에는 편한 옷을 즐겨요. 그렇다고 펑퍼짐한 옷은 아니고 조이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내 몸이 자유로운 옷을 좋아해요. 질감이나 몸에 감기는 느낌이 불편하면 안 입어요.
-비슷한 맥락인데, 김혜수씨는 영화 속에서 길이나 복도를 굽있는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모습을 자주 봐요. 새 영화에 들어가면 혹시 “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걷자”를 따로 구상하나요? =제 걸음걸이를 좋아하고 의미를 부여한 두분이 있는데 <얼굴없는 미녀>의 김인식 감독님, <타짜>의 최동훈 감독님이에요. <얼굴없는 미녀>의 지수는 줄곧 걷고 <타짜>의 정 마담은 걷는 뒷모습을 자주 보여주죠. 한데 두분의 기준과 표현방식은 달라요. 김 감독님은 제가 걷는 모습이 멋지다고 하셨고요. 최 감독님은 이러셨어요. “혜수씨는 참 성의있게 걸어요. 발목과 무릎이 꺾이는 모양이 성의있어요. 보폭이 크고 또박또박 걷는데, 당당한 듯하면서 고개는 숙이고 있어요.” 따로 신경은 전혀 안 쓰고 남들처럼 무심히 걸어요. 신발은, 조리 샌들 아니면 보통은 신고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의 하이힐을 아주 사랑해요. 뭐든 중간치는 별로 안 좋아해요.
“모성은 영원한 테마라고 생각해요, 존재의 기본이니까요. ”
-영화를 같이 작업한 분들의 경험에 따르면 자료 수집이나 아이디어 구상에 열심이라고 들었습니다. 연출부스럽다고 할까요? =맞아요. 대학에서 연출부 경험도 있고요. 일단 작품을 할 때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건 감독이 이 영화를 어떤 식으로 표현하려고 하느냐예요. 사실, 배우는 캐릭터에만 집중하는 쪽이 맞아요. 하지만 연출에 관련된 부분에 관심이 가고 재미있는 걸 어떡해요. 감독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잡으면 저는 그 다음엔 정말 감독을 제대로 보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 잘하는 스탭들한테도 홀딱 반해요. 이를테면 김우형 촬영기사님! 정말 최고예요.
-최근에도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 싶은 이야기나 아이템이 있었나요? =2년 전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희대의 납치사건> 시리즈를 봤어요. 그중 1970년대 미국 언론 재벌 딸의 납치사건이 흥미로웠어요. 대학생이었던 여자는 샤워 가운 차림으로 납치됐고 벽장 속에 갇혀 강간당하고 세뇌당했어요. 6개월 동안 그녀를 녹화한 테이프를 보면 처음에는 아빠가 구해줄 것을 믿는다고 말하다가 점점 아빠를 비판하기 시작해요. 급기야 납치범 두목을 사랑해 은행털이에 가담하는데 일당은 소탕되어 죽고 혼자 살아남아요. 그리고 30년형을 선고받았다가 8년 뒤 풀려나요. 한국을 배경으로 옮기자고 김지운 감독님한테도 이야기했는데 시큰둥하더라고요. (웃음) 또 하나는 엘리자베스 킴이 쓴 <만 가지 슬픔>이라는 책이에요. 모녀 3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비극이죠. 전쟁통에 미군과 사랑에 빠져 홀몸으로 작가를 낳은 어머니는 동네 아이들이 혼혈인 딸에게 돌을 던지면 막아주지는 않고 손만 꼭 잡고 걸어요. 어차피 평생 지켜줄 수 없으니 이겨내라는 거죠. 외가 식구들에게 자살을 종용받은 어머니가 죽고 네살 된 작가는 고아원에서 미국으로 입양되는데 계속 비극이 찾아와요. 신파적 요소를 빼고 현재 시제에서 거슬러 올라가도록 구성하면 미니시리즈로 괜찮을 듯해요. 오히려 끔찍한 장면을 영화적으로 풀 수 있다면 영화로서 좋을 것 같고요. 딸과 엄마는 1인2역이면 좋겠어요.
-이야기를 읽을 때 극중 여성 자리에 자기를 대입해놓고 보는 편인가요, 이야기 전체를 보는 편인가요? =후자예요. 보통 영화인들이 소설이나 뭘 봐도 머릿속으로 캐스팅하는 병이 있긴 하죠. 예컨대 <영원한 제국>에서 이인몽의 처 윤상아는 내가 해야겠다 싶었어요. 유약한 이인몽을 움직이는 여자는 의지만 강한 것이 아니라 모성애가 있어야 한다고 읽었는데 저는 그 모성애를 알 것 같았거든요. 생각처럼 연기로 보여주진 못했지만….
-많은 인터뷰에서 엄마, 어머니, 모성은 당신의 관심이 머무는 화제네요. =모성은 남녀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고아에게도 결국은 영원한 테마라고 생각해요. 존재의 기본이니까요.
-어떤 기능이나 노동을 사회에 팔아서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들은 일과 자아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데 배우는 숨을 구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안 숨으면 되죠! 일과 사생활을 굳이 분리하던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지나치게 구분지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편해졌어요. 자연스럽게 밀착되면 밀착하는 것이고, 일의 부담 때문에 정말 원하는 것을 안 하는 시기는 어려서 지났어요. 내게 진짜 중요한 거다 싶으면 놓지 않아요. 제가 놓치거나 포기하는 게 있다면 그만큼 중요하지 않아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