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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흑역사의 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서 생각하면 지워버리고 싶은 자신의 행동이나 모습,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 빨개지는 과거, 이런 일은 꼭 자기 전 가장 평온한 시간에 침실로 슬며시 침입한다. 그냥 당할 수만은 없어 발차기를 해본다.
하나, 둘! 이걸로 잠깐은 괜찮겠지만 마음에 남은 찜찜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도 이불킥을
글: 이동은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1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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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옳고도 얄궂은 싸움
지난 7월 18일, 화제의 다큐멘터리 <주전장>(감독 미키 데자키) 상영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GV) 자리는 최근 목격한 그 어떤 행사보다 뜨거웠다. 보통 이때 감독과 관객 사이에 흐르는 것은 강 같은 침묵이지만, <주전장>의 GV는 달랐다. 감독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지자, 객석은 누구보다 높이 번쩍 든 수많은 손들로 격렬하게
글: 오혜진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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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나뭇가지에 관한 몇 가지 거짓말
어느 날 친구가 연구실을 방문했다. 이 친구는 다소 괴짜로 알려져 있었는데, 특히 길에서 아무 물건이나 주워 그것들로 생활 소품과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 솜씨가 있었다. 그날은 품에 한 가득 나뭇가지들을 가지고 연구실에 들어왔다. 근방의 공터에서 주웠다며 나뭇가지들이 괜찮아 보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답은 않고 “그것들을 어떻게 집에 가져가려고?”
글: 심보선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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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몰랐을 리 없다
한 아이스크림 회사의 광고가 아동을 성적으로 대상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제가 제기되고 하루 만에 해당 광고는 삭제됐지만 논란은 그보다 오래갔다. 삭제하고 올린 사과문에는 “일반적인 어린이 모델 수준의 메이크업을 했고, 평소 활동했던 아동복 브랜드 의상을 착용했지만, 불편함을 느끼는 고객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영상 노출을 중단”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글: 권김현영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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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나의 식당을 지켜줘
죽집의 풍경은 대개 비슷하다. 대형 식당은 거의 없고, 식탁도 몇개 되지 않는 소박한 곳이 대부분이다. 아마 단체 손님을 받을 일도 드물 것이다. 죽이라는 음식에 왁자지껄한 풍경은 선뜻 떠올리기 어렵다. 분위기를 돋우기보다는 차분하게 혼자 혹은 둘이서 떠먹어가는 메뉴에 가깝다. 죽은 평소에 먹기보다는 주로 소화기능이 떨어졌을 때 찾거나, 아픈 누군가를 위
글: 이동은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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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내가 모르는 시간’에 대한 상상
“이게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너무 극단적인데요.” 학생들에게 소설 감상문을 받아보면 꼭 이런 질문이 있다. 전통적인(?) 문학 교육을 받은 나는 당연히 난감하다. 에? 이건 픽션인데 왜 그런 질문을 하지? “일어나죠. 여자를 강간하고 줘패며 남자들끼리 우애를 다지는 일은 현실에 비일비재합니다. ‘장학썬’(장자연·김학의·버닝썬) 게이트를 보
글: 오혜진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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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끔찍한 돌봄
예나 지금이나 돌봄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적용되는 관계는 가족일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돌보고 자식은 노부모를 돌본다. 돌봄이라는 말은 흔히 친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보살핌을 뜻한다. 그러나 돌봄에는 정신적 보살핌뿐만 아니라 물질적 보살핌도 있다. 물질적 보살핌은 자연스럽게 주어지지 않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대부분의 물질적 보살핌은 구매를 통
글: 심보선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19-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