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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사랑은 유리 같은 것
영화에 생략된 ‘은희’와 ‘지숙’의 두 번째 투숏은 지숙의 방 침대에 누워 ‘sex’를 발음하는 전자사전 기계음을 반복 청취하며 자지러지는 모습이다. 사적 공간인 ‘방’에서 기계음을 빌려 크게 발음해보는 섹스, 섹스, 섹스…. 영화가 대서사시처럼 그려낸 10대 여성의 “광대한 마음의 지도”, “정서적 스펙트럼”의 한축은 분명 온갖 종류의 ‘친밀성’에 대한
글: 오혜진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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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계획가족의 비애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보면서 영화 <기생충> 생각이 났다. 특히 주인공 가족의 아버지 기택(송강호)이 했던 말 “아들아, 넌 계획이 있구나”가 자꾸 떠올랐다.
옛날엔 “가족계획”이란 말이 있었다. 1960년대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펼친 캠페인이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정부 표
글: 심보선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1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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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이상적인 경청의 세계
향유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예술로 얻고 싶다면 그만한 시간을 기울여야 한다. 책으로 진입하는 머리글을 읽을 인내심과 스크린 앞에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두 시간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어색한 분위기와 초조함과 마법 같은 이끌림과 불현듯 다가오는 슬픔 같은 것들이 몸을 통과하도록 두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면 작품 역시
글: 김겨울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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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하지 않을 자유
휴대전화가 막 등장했을 때는 최신 휴대폰을 갖는 것이 능력의 척도였다면, 휴대전화가 흔해진 지금은 휴대폰을 갖지 않아도 되는 쪽이 오히려 능력자다. 휴대전화가 경제활동의 필수품이 되면서, 휴대전화가 없다는 것에 ‘특별한 소득 활동을 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한 상태’라는 새로운 지위가 부여된 셈이다. 소득 활동뿐만 아니다. 현실에서 휴대전화 번호가 없이는
글: 이동은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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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고작 이 정도의 인간
올해 상반기, 한 대학에서 일주일에 두번 시간강사로 일했다. 학생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는 수업이라서 꽤 긴장하며 수업에 임했다. 봄기운이 가득했던 3월, 장미 넝쿨이 만발한 담을 따라 걷던 5월의 출근길은 행복했다. 햇볕이 공격적으로 따가워질 즈음, 내 근무환경도 따가워졌다. 조교는 종강을 앞두고 시간강사 해촉문서를 보내왔다. 내가 아닌, 수업에 참여하는
글: 오혜진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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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시인이라는 직업군
최근 시인의 직업적 정체성과 커리어를 연구하고 있다.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의 직업적 특성에 대한 연구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연구들은 예술가가 직업적으로 매우 애매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조직에 속해 정기적으로 임금을 받는 경우도 드물고 표본으로 삼을 일반화된 커리어 경로도 알려져 있지 않다.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고가로 팔기도 한다.
글: 심보선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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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이름을 불러주세요
사람들이 본명으로 오해하곤 하는 ‘김겨울’이라는 이름은 사실 필명이면서 예명이다. 음악을 하겠다고 곡을 쓰고 공연을 하러 돌아다니던 시절 지었다. 본명이 너무 평범해서 기억에 남을 만한 이름을 하나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어릴 때부터 내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이름을 부르면 한반에서 4명이 손을 들곤 했으니까. 뭔가 멋진 이름을
글: 김겨울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19-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