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빵집 주인은 부부에게 따뜻한 롤빵을 건네고, 그들은 밤새워 이야기를 나눈다. 부부는 불과 며칠 전 아이를 잃었다. 아이의 생일 케이크는 완성되었지만 그걸 먹을 사람은 없다. 그들은 밤새워 이야기를 나눈다. 며칠간 허기져 있던 배를 채우고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마지막 장면이다. 따뜻한 롤빵이 먹고 싶다. 나의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된 사람에게, 내가 느낀 환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분노와 슬픔과 지겨움을 들려주고 싶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상실을 털어놓고 싶다. 아니, 다른 이에게 따뜻한 롤빵을 건네고 싶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를 나누고 싶다. 당신이 받은 냉대와 조소를 가만히 듣고 싶다. 당신의 아픔 근처에 내가 서 있다고 말하고 싶다. 밤새워 당신을 위로하고 싶다. 밤새워 같이 화를 내고 싶다. 가끔 농담을 건네며 웃기도 하고 싶다. 서서히 아침이 밝아오면 꿀을 타고 계피를 한 조각 넣은 따뜻한 차로 몸을 덥히고 싶다.
롤빵을, 아주 많이 구워야 한다. 연일 보도되는 성착취 범죄 사건을 보며 생각했다. 피해자들의 마음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사람들의 마음이 비통함으로 가득 차는 동안 이들의 마음은 어디에 머무르고 흘러가고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제 안심하게 되었을까. 피해의 증거가 더 퍼질까봐 두려울까. 관음증적인 보도를 보며 치를 떨까. 가해자들은 또 다른 플랫폼으로 자리를 옮기려 애쓴다는데, 여전히 유사한 피해를 받고 있으면 어떡하지. 가해자는 기자에게 이 사건을 보도하면 피해자의 목숨이 위험하다며 협박했다는데, 혹시나 지금도 협박당하고 있는 피해자는 없을까. 괜찮을까. 잘 살고 있을까. 생존 이상의 삶을 허락받고 있을까. 이런 걱정마저 피해자를 어떤 틀 안에 가두는 것이면 어쩌지.
그들에게 롤빵을 대접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롤빵을 모아 그들에게 건네고 싶다. 따뜻한 커피를 끓여주고 싶다. 끌어안고 춤을 추고 싶다. 천국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출 수 있는 유일한 춤을 함께 추고 싶다(<안토니아스 라인>).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고, 우리는 아주 조금씩 거기로 나아갈 테니까 한번 살아나가보자고, 이 말이 조금의 위로조차 되지 않는다 해도, 어떤 기만으로 느껴진다 해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그렇게 되도록 우리가 만들 거라고 약속하고 싶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삶의 일부를 바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당신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간신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라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미안하다는 것뿐이라오.”(<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우리는 이제 롤빵을 굽자. 그것을 공감이라 불러도, 따뜻함이라 불러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이라 불러도, 뭐라고 불러도 좋다. 무엇이든 그럴 시간이 된 것이다. 우리가 차를 끓이고, 롤빵을 구울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