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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스타일리스트의 윤리를 보여달라, <타짜>
2년 전 나는 <범죄의 재구성>에 관한 글(<씨네21> 제450호, ‘<범죄의 재구성>의 반짝이는 공허함을 보는 방법’)에서 “우리는 이제 갓 첫 영화를 만들었을 뿐인 최동훈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속단할 수는 없다”고 쓴 바 있다. 그럼 최동훈의 두 번째 영화 <타짜>를 보고 난 지금
글: 유운성 │
200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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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놀이판에서 빠진 것들을 상기하다, <라디오 스타>
<라디오 스타>는 이준익 감독과 최석환 작가가 호흡을 맞춘 세 번째 작품이다. 두 전작 <황산벌>(2003)과 <왕의 남자>(2005)가 역사적인 패자(敗者)들의 이야기였듯, <라디오 스타>는 이 시대의 패자들의 이야기이다. 한물간 ‘스타’와 그를 20년 동안 ‘얼굴에 똥칠해가며’ 뒷바라지해온 매니저의 이야기. 잠
글: 변성찬 │
200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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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사이에서>, 인간과 신,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의 존재론
흔히 무당을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인 샤먼은, 신비로운 어감과는 달리 좀 싱거운 유래를 가졌다고 한다. 17세기 끝 무렵에 러시아를 여행하던 어느 네덜란드 상인은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부근에서 듣도 보도 못했던 종교의식을 목격한다. 퉁구스족 박수무당이 벌이던 일종의 굿이라 짐작되는 의식이 서구 기독교도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 것이다. 상인의 ‘저게 무엇이냐
글: 김장호 │
200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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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편견은 오래 지속된다, <호텔 르완다>
악질적인 식민분리주의가 씨를 뿌린 르완다 내전을 다룬 영화 <호텔 르완다>엔 불행히도 서구제국주의의 시선과 종족간의 편견이 그대로 녹아 있다. 영화는 르완다 사태의 뿌리를 간과한 채 ‘야만적 가해자-후투’ 대 ‘문명적 피해자-투치’, 그리고 ‘그들(투치)을 지켜주는 외국인’이라는 식민분리주의 도식을 반복한다. 이 영화가 서구인들에게 보여짐으로써
글: 황진미 │
200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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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플라이트 93> 읽기 [2] - 미국의 자존심을 위로하는 무용담이다
9·11 사태 뒤 5년, 기다렸다는 듯 개시된 전쟁과 숱한 의혹들, 최근엔 자작극이었음을 주장하는 영화 <루즈 체인지>가 화제인 가운데 <플라이트 93>이 개봉되었다. 9·11의 정치적 맥락을 생략하고, 생생한 재현을 통해 공포를 체감케 하는 이 영화가 내세우는 미덕은 ‘사실성’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살아나는 건 ‘사실성’이 아닌
글: 황진미 │
200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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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플라이트 93> 읽기 [1] - 애국주의 신화를 부숴버린 영화
영화라는 게 파괴 행위를 즐겨다루다보니 본의 아니게 TV로 생중계된 9·11 사건은 수백만명에 의해 마치 진짜 재난영화처럼 경험되었다. 그렇다면 9·11을 다룬 영화는 재난영화에 대한 재난영화가 되고 마는 걸까?
올리버 스톤의 새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어떤 의미에서 1974년작 <타워링>의 리메이크라면 <플라이트
글: 짐호버먼 │
200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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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소년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리턴>
중세 기사 이야기에서 신참내기 기사는 언제나 길을 잘못 들어서게 되고, 던전에 갇혀 예기치 않은 결투를 벌인다. 그러나 사실 그 길은, 또 그 용은 기사가 잘못 만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가야만 하고, 만나야만 하는 대상들이다. 그는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길 찾는 법을 배우고, 궁극적으로 이겨야 하는 큰 적을 상대하는 기술을 익히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글: 김지미 │
2006-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