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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예술에 겁먹기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글을 써왔지만 전통적 의미로서의 ‘순문학’에 속하는 소설을 쓰는 일은 피해왔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러한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섣불리 판단해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설을 쓰게 될 경우 낱낱이 드러날 현실의 파편들이 두려워서였다. 내가 쓰고 싶어 하는 어떤 이야기들은 그 이야기에 간접적으로나마 표현될 인물들
글: 김겨울 │
202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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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대한민국, 2020년 7월
2020년 7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명실공히 디스토피아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목사를 교회의 재판위원회에 회부했다. 교회 사건에는 교회 내부 규정이 적용되는데, 교회 재판위원회는 교인을 ‘처벌’할 수 있다. 가장 무거운 처벌은 출교인데, 공동체에서 한 사람을 죄인으로 선포하며 내보내는 것이다. 이동
글: 정소연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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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숨겨진 주인공들
<안개> 등을 연출한 김수용 감독이 이만희 감독과 경부고속도로를 지날 때의 일이다. 당시 베트남에서 전쟁영화 <고보이강의 다리>를 찍고 돌아온 이만희 감독은 김수용 감독에게 경부고속도로가 무슨 색깔로 보이느냐고 물었다. 김수용 감독은 카메라의 노출 얘기인가 싶어서 맑은 날엔 하얗게, 흐릴 땐 검게 찍힌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만희 감독
글: 이동은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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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송삼동, 무지개다리를 건너다
지인의 집에 처음 방문하기로 했다. 그 집에 ‘송삼동’과 ‘장그래’, 두 고양이가 있다고 했다. 고양이에 대한 비합리적 공포가 있던 나는 삼동이 사진을 보며 심리적 장벽을 미리 없앴다. 드디어 ‘실견’. 크고 동그란 옥색 눈과 형형한 눈빛, 거대한 몸집. 삼동이는 엄청난 크기와 상대를 베어버릴 듯한 눈빛, 치밀하게 계산된 예민함으로 나를 압도했다. 낯선
글: 오혜진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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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몸을 짓는 일
가끔 생각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는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는 질문. 조금 정신이 흐려지더라도 고통을 줄이는 쪽을 원하세요, 통증이 있더라도 정신을 유지하기를 원하세요. 이 물음에 자신 있게 후자를 선택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의 몸에 아픈 부분이 없거나 큰 아픔을 이겨낸 경험이 있는 강인한 사람이리라. 지금 무슨 생각을 하든 실제로 그 상황에 처하지
글: 김겨울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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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유언장을 작성하다
얼마 전, 나는 예전부터 생각했던 일을 하나 해치웠다. 유언을 한 것이다. 꽤 예전부터 할 일 목록에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우선순위가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내게 유언은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 변호사로서 내가 가진 몇 가지 믿음(?) 중 하나는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망인과
글: 정소연 │
일러스트레이션: 다나 │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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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로부터]
기억하지 않는 고통
건강검진을 받던 날, 위 수면내시경 검사를 하기 위해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손등에 진정제 주삿바늘을 꽂으며 설명을 했다. 바로 앞에 내시경 호스가 보였다. 저게 입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는구나. 검은 색깔부터가 두렵다. 입으로 들어가는 건데 이왕이면 초록색이나 딸기셰이크 같은 분홍색으로 만들 순 없을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일어나세요” 하
글: 이동은 │
일러스트레이션: 박지연 │
2020-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