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사람들이 꽤 많이 이동했다. 설은 한해를 시작하는 큰 명절이기도 하고, 코로나19 대유행이 장기화되자 여러 사정으로 ‘모이지 않기’가 오히려 쉽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결혼 12년차. 우리 집의 명절 준비도 순탄치 않았다. 친정에는 진작에 가지 않기로 했으나 시가가 문제였다. 얼굴을 보지 못한 지 반년이 다 되어 가니 설날에는 꼭 밥 한끼 같이 하고 싶다는 어르신들의 바람이 가볍지 않았다.
효와 관습을 둘러싼 갈등은 당위나 관념으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이리저리하면 안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는 당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본래 그런데다 서로 무감(無感)하지 않고 사랑과 부담이 얽혀 있으면 더 어렵다.
세배를 하네 마네 어디서 하네 식사를 하네 마네 한참 말이 오갔다. 심지어 설날 당일까지도 결정이 되지 않았다. 부모님은 서운해하시고 나는 마음이 상하고 남편은 내 눈치만 보다 연휴가 끝날 것 같았다. 결국 설날에 남편이 말하기를, 주말 아침에 시가에 가서 세배를 하고, 브런치로 간단히 샌드위치를 사다 먹기로 했단다.
딴에는 정리한 것 같다마는 샌드위치라니? 내 안의 K-유교걸이 즉각 반발했다. 아예 아무것도 안 먹든가 지금이라도 서로 거리를 충분히 두고 명절 느낌이 나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음식점을 알아보든가 하지 설날 아침에 샌드위치를 먹겠다고? 그 어정쩡한 타협안은 뭐야? 남편은 자기가 샌드위치를 샀다고 했다. 불안했지만 알았다고 했다. 그래, 네가 알아서 해 봐라, 하는 심정이었다.
시가로 출발하기 직전에 일정이 또 바뀌었다. 샌드위치는 역시 아니라는 결론이 난 모양이었다. 나는 도리어 안심했다. 노부모와 넷이 둘러앉아 설 음식으로 샌드위치를 먹는 것은 내 안의 유교걸이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복을 입고 시가에 가서 마스크를 쓰고 세배를 했다. 세뱃돈을 받았다. 어머님이 휴대폰 메신저 알람이 밤에도 울려 잠에서 깬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님의 휴대폰을 받아들고 알림을 꺼드렸다. 안 쓰시는 홈쇼핑 앱을 지우고 광고 알림 수백개를 없앴다. 문자메시지와 메신저를 메인 화면으로 올렸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있는 각종 앱도 한 페이지에 깔끔하게 정리했다. 태극기 앱을 뒤로 밀어낸 자리에 팟캐스트 앱을 넣고, 요즈음 내가 진행하고 있는 EBS 팟캐스트 <오래달리기>에 구독과 좋아요를 눌렀다.
<오래달리기>가 훌륭한 방송이고 진행자가 정말 멋있다는 후기를 어머님 아이디로 쓰려는데, 부모님이 이제 집에 가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님의 손을 잡고 걸었다. 걸음이 꽤 자연스러워지신 어머님은 “소연이 너는 안 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양반집에서 커서 잘해. 어쩔 수가 없어”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대강 칭찬으로 들으면서도, 양순하게 “네”하지를 못하고 “저 안 하려고 애 안 써요”라는 말을 굳이 보태며 어머님의 손을 잡은 내 손에 힘을 주었다. 코로나19만 아니라면 어머님을 안아드리고 싶었다.
저녁에는 문제의 샌드위치를 먹었다. 고작 식빵 두장을 사등분한 샐러드 샌드위치였다. 몹시 차가워 계절에 맞지 않는 데다 어르신들은 드시기 힘들 제법 두껍게 썬 사과가 들어 있었다. 나는 남편을 가볍게 타박하며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씹으며, 복잡한 사랑과 유한한 시간이 주는 막연한 불안과 후회를, 결국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