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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거절은 구원인가
<필경사 바틀비>(1853)는 월 스트리트에 개업한 변호사의 눈에 비친 한 인물의 기이한 언행을 담은 허먼 멜빌의 단편이다. 이미 두명의 필경사를 데리고 있던 변호사는 늘어나는 업무를 감당할 수 없어 또 다른 필경사를 고용한다. 바틀비라는 이름의 이 새 직원은 차분한 성격으로 엄청난 양의 업무를 훌륭히 처리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언제부터
글: 진중권 │
201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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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악마의 철학
‘선’과 ‘악’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행위를 평가하는 술어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대와 중세의 인간들은 형용사에 속하는 이 술어를 ‘천사’ 혹은 ‘악마’와 같은 명사로 실체화했다. 형이상학적 실체로서 악마의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아마 근대 초기의 마녀사냥이었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진지하게 악마의 실존을 믿었고, 악마의 자식들을 찾아내어 절멸시키려
글: 진중권 │
201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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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인셉션>의 철학
이게 다 ‘인셉션’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혹시 지각(perception)이나 통각(apperception)처럼 뭔가 쓸 만한 개념을 얻지 않을까 해서 영화관을 찾았으나, 그 기대는 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약물을 이용해 남의 꿈에 들어간다는 발상은 <매트릭스>의 뇌 과학적 버전일 뿐이고, 불쑥 스토리의 중간부터 시작하는 미디아스 인 레스(med
글: 진중권 │
201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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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생성의 바탕이 되는 그 장소
오래전 이스탄불을 여행하던 중 ‘코라’(chora)라는 이름의 교회에 들른 적이 있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나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도성 밖의 들판에 있는 교회라서 그렇게 부른단다. 참고로, 고대 그리스에서 ‘코라’(χωρα)는 일반적으로 폴리스를 둘러싼 변두리를 가리켰다. 아무튼 그 교회에서 화려한 비잔틴 모자이크와 마주쳤는데, 변두리의
글: 진중권 │
201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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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당신의 꽃불을 그려라
필리핀에서 가톨릭은 국교나 다름없다. 관광객에게는 이 나라가 그저 도덕적으로 방탕한(?) 여느 휴양지처럼 보이겠지만,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의 삶에서 종교가 발휘하는 역할에 놀라게 된다. 현대사회의 신도들이야 세속적 삶과 종교적 삶을 비교적 분명하게 구별해놓고, 후자에 일주일의 하루를 할당하여 ‘주일’이라 부르는 정도일 것이나, 필리핀에서 종교는
글: 진중권 │
201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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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촛불은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깜박인다
‘시차’란 특정한 천체가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가령 지구에서 특정한 별의 위치를 관측한다고 할 때, 그 별의 위치는 지구가 공전궤도의 한쪽 끝과 다른 쪽 끝에 있을 때 각각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지구에서 그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하곤 한다. 시차는 우리의 일상에 속하는 현상이기도 하
글: 진중권 │
201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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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생성의 존재미학
어느 나라에나 외국인들이 먹기 힘들어 하는 음식이 있다. 필리핀에는 ‘발롯’이라는 게 있는데, 그놈의 정체는 부화하다가 만 반(半)병아리 상태의 달걀을 삶은 것이다. 어제 드디어 길바닥에서 놈을 먹어볼 기회를 가졌다. 먹는 법은 간단하다. 달걀 꼭대기를 깨서 구멍을 내고, 그리로 소금과 소스를 넣어 먼저 액즙을 마신 뒤, 이어서 껍질을 까서 나머지 고형물
글: 진중권 │
2010-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