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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아우라를 걷어내고, 때로는 납작하게
길거리를 꽉 메운 인파를 뚫고 의전 차량 행렬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기어간다. 오늘의 목적지인 뤼미에르 극장 앞에 도착해서도 예정 시간보다 한참 오래 대기하는 차량 뒷좌석에 앉아, 몇 차례 입술을 달싹거리던 내가 비로소 모기 같은 목소리를 낸다.
“감독님, 덕분에 이렇게 칸영화제에도 와보고 감사합니다.”
(사이)
“다 우연입니다. 별다른 의미 부
글: 김신록 │
202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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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오색약수터 예술론, 그리고 배선희
- ‘잎사귀들 색깔이 진짜 다양하다!’ 이렇게 안 끝나고 꼭 ‘자연이 이렇게 각양각색인데 우리 인간도 다양성을…’ 이러질 않나, ‘경이롭다!’ 이렇게 안 끝나고 꼭 ‘조물주여…’ 이러고, ‘아름답다!’ 하면 될 걸 금방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예술이 다 뭔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렇게 흘러가버려. 가치나 의미나 개념으로 환원하지 않고 그냥
글: 김신록 │
20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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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냉장고를 부탁해
부엌 바닥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냉장고를 노려보고 있다. 조금 전 릴스 알고리즘으로 알게 된 몇 가지 초간단요리들을 식단표에 막 추가한 참이다. 나는 지금 골똘하게 생각 중이다. 이연복 셰프가 알려준 양배추 돼지고기볶음에는 돼지고기 앞다리 살 대신 냉동실에 있는 훈제 삼겹살을 넣으면 되겠군. 드디어 냉장실에 굴러다니는 양배추 조각을 소진하게 되겠어. 어
글: 김신록 │
202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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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마감 압박
아침 6시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눈을 뜨다가 9시에 거실로 나와서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다. 뭐라도 써보려고 주리를 틀며 앉아있다가 김혜순 작가의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너>의 ‘초판 책머리에’와 ‘개정판에 부쳐’ 부분을 읽고, 텍스트 기획자이자 영화 도서 전문 편집자인 임유청의 <까마귀의 모음: 스몰
글: 김신록 │
20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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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풍경-얼굴
지금 시몽의 심장은 이 나라의 다른 도시로 이동 중이고, 그의 간, 폐, 신장도 다른 도시의 다른 몸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다 조각나 버리면 이제 시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지구상에서 그의 그림자는, 그의 유령은 어떤 모습일까? 시몽의 심장이 낯선 이의 몸에서 뛰기 시작할 때 줄리엣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이
글: 김신록 │
202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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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이중(Double)
“책상에 오래 앉아 계시죠?”
“아니요. 저 정말 ADHD인가 봐요. 엄청 산만해요. 공부는 어떻게 했나 몰라요.”
잠깐, 난 정식으로 ADHD 진단을 받은 적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진짜 ADHD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는 게 아닐까?
“지리학과는 왜 선택하셨어요?”
“성적이 그 정도였던 거죠, 뭐.”
잠깐, 진지하게 지리학
글: 김신록 │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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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레디, 액션, 컷, 오케이!
레디!
새벽 2시, 비 오는 홍콩 거리를 레커차에 실린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달린다. 예상에 없던 비가 부슬부슬 내린 탓에 제작부 스태프 한명이 레커차에 올라타서 몸을 낮추고 숨어 있다가, 컷 소리가 나면 일어나 손걸레로 부리나케 차창을 닦는다. 잠시라도 비가 잦아드는 틈을 타 바로 슛을 가기 위해, 적당한 타이밍을 노리는 수완 없이 그냥 컷과 다음
글: 김신록 │
202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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