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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이중(Double)
김신록(영화배우) 2026-01-01

“책상에 오래 앉아 계시죠?”

“아니요. 저 정말 ADHD인가 봐요. 엄청 산만해요. 공부는 어떻게 했나 몰라요.”

잠깐, 난 정식으로 ADHD 진단을 받은 적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진짜 ADHD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는 게 아닐까?

“지리학과는 왜 선택하셨어요?”

“성적이 그 정도였던 거죠, 뭐.”

잠깐, 진지하게 지리학과를 선택한 분들에게 모욕적인 발언인가? 게다가 난 학교장 추천제로 대학을 갔으니 점수 맞춰 간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는 ‘아버지가 기초학문을 하라고 권하셔서 지리, 철학, 역사 중에 골라서 지원했다’고 대답한 적이 있으니 나 방금 거짓말한 셈이 된 건가? 하지만 내가 더 자신 있고 더 공부를 잘했다면 나나 아버지나 법대나 경영대에 지원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성적 맞춰 간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집에서는 어떤 사람이에요?”

“일할 때랑 집에 있을 때랑 완전히 달라요. 집에서는….”

잠깐, ‘그 사람은 카메라 앞에서나 뒤에서나 똑같아’가 칭찬으로 여겨지는 업계에서 나 지금 괜한 소리 한 건가?

모르는 게 약이라고, 연예인이 공인이네 아니네 논쟁적인 이 시대에 말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맥락이 교차하는지 인식하다 보니 정말이지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내년 1월21일 개봉을 앞둔 <프로젝트 Y> 홍보차 출연한 유튜브 촬영 때 들었던 생각이다.

회사 송년 모임에서 선배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선배가 “너 정말 촬영하면서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이야?”라며 진심으로 탄식한다.

“안돼, 촬영할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솔직하게 해야 해. 안 그러면 즐기는 바이브가 안 나와. 그러면 매력이 없어. 그냥 자유롭게 하면 주변에서 보고 있는 회사 사람들, 프로그램 제작진이 다 알아서 걸러주고 지켜줄 거야. 자기 배우, 자기 프로그램 망하길 바라는 사람 하나도 없어. 눈이 몇개야, 걱정하지 마.”

하지만 ‘편집에서 그거 안 거르고 뭐 했냐’며 질타받는 수많은 프로그램과 출연자들을 봐왔기에 선배 말에 의지하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안심이 안된다. 작품 안에서, 그러니까 허구의 이야기 안에서 박정자로, 진화영으로, 서명주로 혹은 다른 누군가로 불리며 작가가 써준 말을 할 때는 전혀 두렵지 않던 카메라가 ‘안녕하세요, 김신록입니다’로 시작하는 자리에서는 왜 이렇게 불온하게 느껴지는지, 나 자의식과잉인가? ‘누가 뭐 얼마나 본다고’, ‘사람들은 너한테 크게 관심 없어’ 같은 안이한 생각과, 말 한마디 움직임 하나하나가 진짜 나로 오해될 나의 분신, 나의 이중(double)을 빚어내고 있다는 과민함이 수시로 교차한다.

“괜찮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어. 그냥 편하게 해. 너 괜찮은 사람이잖아. 나도 괜찮은 사람이고, (옆자리 후배를 가리키며) 얘도 괜찮은 사람이고. 우리 다 괜찮은 사람이잖아.”

다음날 아침, 카톡 진동에 잠이 깬다. 엄마가 보낸 릴스 링크를 열어보니, 어느 교회 유치부 교사인 듯한 여자가 그림판을 들고,

“예수는 이름, 그리스도는 ‘기름 부은 자’라는 뜻인데요, 구약시대에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은 다음 세 가지 부류가 다였습니다.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 예수는 인류 최초로….”

까무룩 다시 잠에 빠져든다. 좁은 룸이 있는 식당인지 술집인지, 6인용쯤 되는 테이블에 4명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중 두명의 눈이 순식간에 검어지더니 정수리에서 뿔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사악하기 그지없다. 세상에! 저 둘이 악마였다니, 정말 몰랐어, 세상에! 나는 남은 한명과 놀람과 공포의 눈빛을 주고받는다. 때마침 목사님인지 교수님인지 누군지, 어쨌든 권위 있는 누군가가 룸에 들어오는데, 두 악마는 그새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낯빛을 하고 있다. 나는 긴박하게 옆 사람에게 눈빛을 보내는데 그 친구는 어쩐 일인지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이다. 어리둥절한 찰나, 목사님 딸인지 천사인지 뭔지, 아무튼 선과 지혜를 담당한 인물 한명이 더 등장하더니 우리에게 밝게 인사를 건넨다. 그러더니 부지불식간에 내 정수리를 만지며, “신록아 너 머리에 혹 났다. 아니면 뾰루진가.” 나는 순간 맹꽁해져서 이게 무슨 말이고 무슨 상황인지 잘 파악이 안된다. 얼결에 손을 올려 내 정수리를 더듬어보니 딱딱한 무엇인가가 비죽이…! 나는 화장실로 뛰어가 거울을 본다. 보일 듯 말 듯 정수리쪽 머리카락이 비죽이 솟아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손을 가져다 대니 이제 막 솟기 시작한, 어쩌면 이제 막 정체를 숨기려다 만 뿔이! 정수리 두피 아래서 비죽이… 내가… 내가… 내가 악마였다니…! 거울 속의 나는 당혹인지, 슬픔인지, 죄의식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나를 보고 서 있다.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내가 마주 본다. 나와 나의 이중. 마주치면 죽는다는 도플갱어처럼 둘 중 하나는 죽게 될까?

아점 식탁에 마주 앉은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했더니, 좋은 로그라인이라며 휴대폰을 켜고 녹음을 한다. 내가 내 꿈에 투사되더니 꿈에서 다시 거울 안으로, 어쩌면 다시 좋은 로그라인을 가진 영화 안으로, 영화 속의 거울 안으로, 다시 이 영화를 홍보하는 유튜브 콘텐츠 안으로 거듭해서 복제되겠구나. 이렇게 나의 이중과 이중과 이중의 이중과 거듭해서 마주치다 보면 진짜 나는 어떻게 될까? 도플갱어와 마주치면 원본은 정말 죽게 될까?

《Doppel-Lumpen》 (d_p, 2025.12.5.—12.21.), 〈룸펜-연습〉 Lumpen-Probe, (2023_2025) ⓒ 제공 d/p·사진 홍철기

입장 예약 시간보다 5분쯤 늦게 도착한 갤러리에서는 이미 퍼포먼스가 진행 중이다. 전시장 바닥 전체에 투명 비닐이 깔려 있고, 비닐과 바닥 사이에는 몇개의 옷 무더기와 스피커들, 휴대용 산소통들이 놓여 있다. 외부 혹은 타인으로부터의 오염을 극도로 경계하는 듯한 그 반진공상태의 비닐 속을 작가이자 퍼포머가 낮은 포복으로 기어간다. 마이크를 단 퍼포머의 거친 숨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공간에 울려 퍼진다. 거칠고 성에 낀 들숨과 날숨이 계속 교차한다. 바닥에 놓인 산소통으로 산소를 흡입하며 비닐 속에서 공간을 가로지른 퍼포머는 드디어 비닐 밖으로 나와 옷을 갈아입는다. 여러 겹의 ‘아르바이트할 때’의 복장을 벗고 ‘예술가일 때 혹은 집에 있을 때’ 입을 법한 검은색 면티와 면바지를 입고 공간을 빠져나간다. d/p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이민재 개인전 <도플-룸펜>(12월5~21일) 중 퍼포먼스 <룸펜-연습>의 일부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몇몇 영상 및 설치 작업과 더불어 3개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데, 전시가 열리는 13일 동안 하루 6시간을 반복한다. 세개의 퍼포먼스는 모두, 비닐 속(<룸펜-연습>)이나 벽장 안을 연상시키는 마룻바닥 밑(<가구가 비치되지 않은>)이나 닫힌 유리문 안(<두려움 이후는 두려움 이전과 같다>)과 같이 외부와의 차단을 의도한 공간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그 공간은 타인과 외부를 극도로 경계하고 배척하면서도 동시에 관객을 불러들이고, 퍼포머의 몸을 관객의 시선에 노출시키고, 퍼포머의 숨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를 증폭해서 들려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작가는 타인에게 노출되는 자신이 자신의 이중임을, 그 이중을 완전히 은폐하거나 폐기할 수 없음을,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어쩌면 숨 쉬며 산다는 것이 이미 이중으로 타인 앞에 서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득, ‘아! 어젯밤 잠들기 전에 남편이 자기 두피에 뭐가 났다기에 내가 손으로 더듬더듬 만졌던 것이 꿈에서 뿔이 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난다. 그랬더니 이제야 비로소 꿈에서 깬 것처럼 마음이 후! 가라앉는다. 거울 속의 뿔 달린 내가 원본의 나와 철저히 절연된 타자이길 바라면서도 음험하게도 그것이 너무나 진짜 나처럼 보여 두려웠는데, 이제는 저 거울 속의 뿔 달린 나는 남편 정수리를 더듬던 나의 변형이라는,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가 서로 그저 불쾌하기만 한 타자가 아니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이상한 친밀감과 안도감이 든다.

20세기 전후에 걸쳐 태어나고 죽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연극 이단아 앙토냉 아르토는 ‘연극과 그 이중’으로 직역할 수 있는 연극 이론서 <Théâtre et son Double>을 남겼는데, 한국에는 <잔혹연극론>이라는 제목으로 1994년에 처음 번역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아르토는 연극과 현실 혹은 그럴듯한 연극과 원초적인 연극은 서로간에 이중일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이 이중의 괴리를 격파할 것인가에 대해 뜨겁게 기술한다. 대학원 다닐 적에 읽었던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으며 거실 책꽂이를 뒤져 <잔혹연극론>(현대미학사 펴냄)을 집어 든다.

《Doppel-Lumpen》 (d_p, 2025.12.5.—12.21.), 〈룸펜-연습〉 Lumpen-Probe, (2023_2025) ⓒ 제공 d/p·사진 홍철기

“획일성과 질서가 지배하는 곳에는 연극도 드라마도 존재할 수 없다. 진정한 연극은 획일성이나 질서가 지배하는 곳을 벗어나서 시처럼 탄생한다.”(77쪽)

“연극을 예술로 만드는 것, 그것은 바로 제스처를 통해 인체 속의 진동을 빼앗아오는 것이다. (중략) 연극은 우리를 인체의 기관으로 직접 인도하는 총체적이면서도 최종적인 수단이다.”(121쪽)

짧은 광고 하나. ‘시처럼 탄생하는, 당신의 몸을 파고들고 진동시킬 단 하나의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2026년 1월13일부터 3월8일까지, 국립정동극장.’ 짧은 광고 하나 더. ‘새해 포문을 열 감각적인 범죄 오락 영화, 단 한번의 기회를 둘러싼 욕망과 배신! <프로젝트 Y>, 1월21일 대개봉!’ 다음주에는 이 두 작품 홍보를 위한 유튜브 촬영과 생방송 라디오 출연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에는 부디 죽지 않고 내가 나의 이중과 악수할 수 있기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혹시 모르니 여러분도 정수리 한번씩 더듬어보세요! 저는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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