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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비평] 불가능을 탐하다, 중화권 청춘영화의 꾸준한 호응에 관한 짧은 칼럼
2월14일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중국 청춘영화 <우견니>가 개봉했다. <우견니>란 제목은 자연히 국내에 ‘상친자’(<상견니>에 미친 자)라는 팬덤까지 형성된 인기 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떠올리게 했다. 찾아보니 영화 <상견니>는 지난해 이맘때쯤인 1월25일 개봉해 당시 36만명이라는 범상치 않은 관객수
글: 이유채 │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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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영화에 대한 깨우침은 언제나 “바로 지금”, 사진으로 보는 이두용의 영화사
1941년에 태어나 1970년에 첫 장편 데뷔작 <잃어버린 면사포>를 만들고 2002년에 60번째 영화 <아리랑>을 완성한 이후까지 한국영화사에 새겨진 이두용의 시간은 너무도 길고 깊다. 그 일부의 순간이라도 붙잡아보고자 이두용 감독의 활동이 담긴 몇개의 사진을 정리했다. 그는 언제나 ‘현업 영화감독’임을 자부했던 현재형의 창작자였다.
글: 이우빈 │
글: 정재현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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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정론은 없다, 2024년에 바라본 이두용 평론가, 연구자들에게 묻다
이두용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그의 전성시대를 함께 지냈던 동료들, 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후세대 감독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두용 감독의 시대를 겪지 못한 영화평론가, 연구자 세대의 생각을 살피는 일이다. 과연 그들은 이두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론은 없었다. 그들의 발상은 특별한 구심점 없이 산발적이었다.
글: 이우빈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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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이두용을 기억하는 ‘최후의 증인’들, 감독들의 추모사, 잊히지 않는 명장면
“김기영 감독의 <화녀 ’82>와 함께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과 <피막>이 나로 하여금 한국에서 필름메이커가 되는 일에 용기를 내게 해주었어요.”(박찬욱 감독) 감독들의 감독이라 불러도 좋을 이두용 감독. 그의 영화로 청년기의 취향을 다듬거나 충무로의 영화 현장에서 짧지만 강렬한 접점을 형성했고, 훗날 이두용 영화의
글: 김소미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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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피막>과 <내시>를 돌아보며, 이두용 스타일이 거둔 이미지의 카리스마
이두용의 뛰어난 영화들은 무성영화의 장점과 통한다. 리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부의 감정 표현도 개의치 않은 채 직진 호흡으로 거침없이 달려가는 그의 상당수 영화들은 잘 세공된 서사의 완급 조절과는 거리를 두지만 섬광 같은 순간들을 포함하고 있다. 압도적인 속도감의 시학으로 핵심을 포착하는 그의 영화의 이미지가 지닌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이두용의 대
글: 김영진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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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이두용에 관한 끝나지 않은 질문들, 이두용 영화의 굴곡은 지금도 왜 유의미한가
<최후의 증인>은 어떻게 전설이 되었나?
1982년, 남산 밑, 영화진흥공사(영화진흥위원회의 전신) 시사실.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의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 두 남자가 충격에 빠진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막 영화계에 입문한 강우석 감독과 20대의 철학도 박찬욱 감독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대로 <최후의 증인
글: 김소미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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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2]
[특집] 2024년에 1970년의 감독을 말한다는 것, 이두용 감독의 역사
2024년 1월19일, 82살로 타계한 이두용 감독을 지금 다시 어떻게 말할 것인가. 2024년에 뒤늦게 1970년에 데뷔한 감독의 이야기를 들추어보는 이유는 그가 흔히 고전영화 감독으로 불리며 회고되는 쟁쟁한 감독 중 누구보다도 분주하고 굴곡진 궤적을 거쳤기 때문이다. 동시에, 지난해 작고한 고 김수용 감독에 이어 들려온 그의 부음은 한국영화의 완전한
글: 씨네21 취재팀 │
2024-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