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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괴상하고 웅장한 앙상블, <킬 빌 Vol.2>
타란티노의 대서사시, 음과 양의 조화 속에 끝맺다
자, 그리고 모험은 계속된다…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2부작 대하 펄프액션 드라마 <킬 빌>은 “신부”라 이름 붙여진 슈퍼여걸(우마 서먼)이 마침내 복수를 달성하면서 만족스러운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유혈 낭자한 전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달콤한(?) 사연과 분위기로 이루어진 후편의 내용
글: 짐호버먼 │
200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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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현란하고 예의바른 리메이크, <새벽의 저주>
<새벽의 저주>의 ‘탈정치성’을 위한 변명
조지 로메로가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자기만의 좀비를 창조한 이후, 좀비들은 조금씩 진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촐한 극저예산영화의 비전문 엑스트라들로 시작했던 이 괴물들은 제작비가 늘고 분장 기술이 발전하고 잔인무도함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무뎌지는 동안 조금씩 능력을 더해갔다.
글: 듀나 │
200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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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과거를 다루는 새로운 경지, <효자동 이발사>
도피나 토로 아닌 조용한 성찰 <효자동 이발사>
정말 ‘이상한 일’이다. 2004년 상반기 한국영화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탐색하고 있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연이은 강진(强振)으로 흔들리던 우리의 ‘스크린’에, 마치 그 여진(餘振)과도 같은 두편의 영화가, 동시에, 찾아왔다. 신인
글: 변성찬 │
200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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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나는 환멸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홍상수 영화’에 관한 메타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이 영화는 남자, 혹은 여자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홍상수의 여성관에 대한 김경욱의 글은 좀더 일찍 나왔어야 했다. 이 영화는 ‘홍상수 영화에 관한 영화’, 즉 ‘메타’영화이다(‘메타’란 이를테면 “내 개그는∼ 송아지야, 말이 안 되지!”라며 자기 개그에 대한 규정 자체
글: 황진미 │
200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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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어려운 아내 대신 쉬운 여자에게로,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은 ‘여성 예찬’이 아니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다른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을 ‘여성예찬’으로 평했다. 나는 거기에 반대한다. 물이 차오르면 욕망이 차오르고, 섹스를 하면 물을 뿜는 그녀 몸은 ‘남자 몸’의 정확한 유비이다. 한마디로 영화는 “그녀(들)도 나(우리)와 같이 발
글: 황진미 │
200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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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쓰레기로부터 신화 만들어내기, <킬 빌>
<킬 빌>, 팝을 이용하는 타란티노 최고의 기교
물끄러미 TV를 본다. 까불까불, 훌쩍훌쩍, 드라마, 광고… 퇴근한 우리는 지쳐 있고 화면은 그저 스쳐 지나간다…. 멍하니 라디오를 듣는다. 뉴스, 토론, 청취자 전화 연결, 옛 노래, 새 노래, 인터뷰, 교통정보… 그저 소리들이 흘러간다. 길이 너무 막힌다….
그 누구도 거기서 벗어날 수는
글: 성기완 │
200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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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김경욱 비평에 대한 반론
김경욱 평론가의 ‘홍상수도 나쁜 남자다: 페미니즘의 비평적 딜레마를 응시하기’(<씨네21> 451호)는 늘, 페미니즘 비평의 논쟁 가운데 서 있던 김기덕을 (오히려)옹호하고, 홍상수를, (특별히)홍상수의 신작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본격 비평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텍스트였다. 그러나 비약 혹은 과장되어 있는 면이 많아 그전에 김기덕에게 쏟아졌
글: 김민영 │
2004-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