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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독자에게]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애매한 재능을 견디는 방법
“엉망진창이야. 다시 써봐.” 오랜 지인이 등단을 했다. 국문과 졸업한 지 15년이 훌쩍 넘었으니 그동안 집필의 끈을 놓지 않은 의지만으로도 존경의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술기운이 적당히 오른 축하 술자리, 지인은 대학 시절 내가 자신의 글을 보고 했던 ‘엉망진창’이란 한마디가 갑자기 떠오른다며 불쑥 술잔을 내밀었다. 묵은 응어리를 푸는 회포의 잔도, 나
글: 송경원 │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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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독자에게]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곧은 말, 너른 삶. 굽은 말, 부박한 생
때론 산처럼 높은 파도의 위용보다 하얗게 부서진 포말이 더 깊은 여운과 잔향으로 기억된다. 좋은 드라마도 마지막 페이지의 결과보다 과정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와 완성되는 법이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열풍이 남긴 후일담을 들으며 어느덧 우리도 맹목적인 결과지상주의의 터널을 지나 과정을 즐길 정도의 여유가 생겼음을 실감했다. 우승의 영광은
글: 송경원 │
20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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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독자에게]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부산 밤바다, 그 날씨에 담긴 BIFF의 추억. 그리고 새로운 기억
기억은 종이에 쓴 기록처럼 ‘정보’의 속성을 지닌 반면 추억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새겨진 가 아닐까 싶다. 이제 10월 초의 부산은 예전만큼 쌀쌀하지 않흔적을 더듬는 ‘감각’에 가깝다. 내 경우엔 가을바람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조건반사처럼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생각난다. 기분 좋게 선선한 바람으론 부족하다. 얇은 겉옷 사이로 바람이 뚫고 들
글: 송경원 │
20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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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독자에게]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의미와 재미 사이, 속편의 딜레마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코끼리만 생각나는 것처럼 언어의 거울에는 종종 속내가 거꾸로 투영된다. 소리 높여 정의를 부르짖는 자들이 대체로 불의에 길들여 있고, 애국과 전쟁을 말하는 이들이 제일 먼저 줄행랑을 치는 법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이 9월26일 화상 기자회견에서 “1편의 반응이 2편에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의식해서 만들진 않았다
글: 송경원 │
20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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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독자에게]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얼굴의 스펙터클, 두 번째 이야기
광복절에 봤던 신기한 영상이 요즘도 종종 생각난다. ‘딥페이크의 긍정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영상에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활짝 웃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늘 엄숙하고 어딘가 경직된 표정으로 기억되던 독립유공자들의 (상상 속) 미소를 보니 오랜 지인의 새로운 면모를 마주한 것처럼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날 이후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를 생각
글: 송경원 │
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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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독자에게]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얼굴의 스펙터클
리뷰 쓸 때 ‘배우의 존재감으로 성립하는…’ 따위의 수사를 간혹 사용한다. 실은 부끄러울 만큼 게으른 표현이다. 영화 글쓰기에서 가능한 한 피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같은 표현을 다른 영화에 썼을 때 위화감이 없다면 그건 실패한 글쓰기다. 속된 말로 영화 안 보고도 쓸 수 있는 표현. 소심하게 항변하자면 때로 그런 표현들은 불가항력을 마주한 일
글: 송경원 │
20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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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독자에게]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소년 시절의 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란 걸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 깨달았다. 일요일 아침마다 숙제처럼 찾아오는 중요한 고민이 하나 있었는데, 아침 8시에 하는 <디즈니 만화동산>을 볼 것이냐, 아니면 조금 더 늦잠을 잘 것이냐를 두고 매번 흔들렸다. 사실 뭘 골라도 상관없었다. <디즈니 만화동산>을 선택한 날은 “이번주는 별로네, 잠이나 더 잘걸”이
글: 송경원 │
2024-09-06